This article aims to explore the relationship between Fazhao’s pure land thought and Manjusri belief. In the history of Chinese Pure Land, Fazhao has a very important position. With the discovery of the Dunhuang Buddhist scripture hole in 1900, documents related to Fazhao also appeared in front of the world. Such as Fazhao’s "jingtu wuhuinianfo songjing guanxingyi" "jingtu wuhuinianfo lvfashiyizan", etc. Throughout the life of Fazhao, induction is an important factor in his practice. During the second induction, he saw Amitabha Buddha, taught him the five confessions of Buddhism, and asked him to promote this method, because this method is very suitable for all beings in this world. For the third time, he saw Wutai Mountain, so he went to Wutai Mountain to spread the teachings and save the people. The fourth induction took place in Mount Wutai, and he saw Manjushri Bodhisattva appear. Fazhao proposed wuhui nianfo. This method is the main method for Fazhao to transform him in his life, and it can also be said to be the center of his Buddhist thought. Wuhui nianfo, that is, reciting the Buddha with five notes of music. On the one hand, it can induce the interest of all living beings to recite the Buddha, and on the other hand, it can enable the chanting of the Buddha to achieve the samādhi of the Buddha with one mind and the title of Buddha. The Wuhui nianfo of Fazhao is closely related to the belief in Manjushri of Mount Wutai. Fazhao came to Mount Wutai and built Dazhulin Temple based on the induction of his own practice. Mount Wutai was already the famous Manjushri dojo at the time. Through the sacredness of the Wutai Mountain Manjusri belief, Fazhao transforms the Wuhui nianfo into the world's best practice, it laid a solid foundation for him to promote this meth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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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법조(法照)의 정토 사상과 문수 신앙의 관계를 탐구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불교 정토신앙에 있어서 법조는 매우 중요한 지위를 점유하고 있다. 1900년 둔황 장경동이 세상에 알려지자 법조 관한 문헌도 발견되었 다. 예를 들어 『정토오회염불송경관행의(淨土五會念佛誦經觀行儀)』와 『정토오회염불약법사의찬(淨土五會念佛略法事儀讚)』 등이다. 법조 수행에서 감응은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두 번째 감응 에서 아미타불을 친견하였다. 아미타불은 그에게 오회염불(五會念佛)법을 전수하여 이 염불방법을 널리 알려달라고 당부하였다. 왜냐하면 이 법문은 세상의 중생들에게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세 번째 감응에 서 오대산을 보았기 때문에 나중에 오대산으로 갔다. 네 번째 감응은 오대 산에서 발생하였고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 법조의 오회염불은 그가 평생 스스로 자신을 다스려 온 주요 법문이자 그의 불교 사상의 중추라고 할 수 있다. 오회 염불이라는 법문은 오음으로 곡을 만들고 염불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중생 염불의 흥취를 유도할 수 있 다. 다른 한편으로는 염불자들이 오로지 불호만을 집중하는 것으로 염불 삼매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법조의 오회염불은 오대산문수신앙과 중요한 관련이 있다. 법조는 자신 의 수행 감응에 따라 오대산에 이르러 대죽림사를 창건하였다. 오대산은 그 당시에 이미 천하에 알려진 문수보살이 주석하는 성지였다. 법조는 오 대산문수신앙의 신성함을 통하여 자신이 개시한 오회염불을 현세 최고의 수행방법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가 오회 염불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