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현재 위치 Home

일반논문

서구 근대 물질문화의 유입과 경험의 공간으로서 초기 선교사 사택 연구
A Study on the Early Protestant Missionary House in Korea as Agency of Influx and Experience of Western Modern Material Culture

첫 페이지 보기
  • 발행기관
    숭실대학교 역사문물연구소(구 숭실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숭실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45집 (2020.12)바로가기
  • 페이지
    pp.107-126
  • 저자
    이철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88457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5,500원

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study is designed to find out the role of the early Protestant missionary house in Korea as agency of influx and experience of Western modern material culture. For the early missionaries who arrived in Korea, their residential house was the only place to lead a stable and independent life. They built new houses or purchased existing ones to sustain the way of life that they had enjoyed in their home country. In case of building new houses, they preferred European-style, and even if they purchased existing houses, the interior was often remodeled into a Western style. They kept various Western goods, ranging from furniture to groceries, in their homes, to maintain a Western-style life. Although the missionary's house was a private space for missionaries, they sometimes opened their own places to Koreans for evangelical works. The Korean people who came to visit the houses saw Western capitalism and its material prosperity with their bare eyes, and missionaries used to attempt linking Christianity and Western material culture to causal relations for the success of their evangelical works. However, the connection between Christianity and material prosperity sometimes caused problems such as "rice Christian," and further made Christianity to become a religion of abundance and prosperity rather than honest poverty. It seems clear that the houses of missionaries and the Western-style life played a part in building up the material image of Christianity in Korean church.
한국어
이 글은 조선에 입국한 초기 선교사의 사택을 통해 서구의 근대물질문명이 유입되고 경험되었 음을 밝히는 종교사회학적 연구이다. 초기 선교사 사택들은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들은 본국에서 살았던 방식에 맞게 주택을 신축하거나 기존 주택을 매 입해 개조하였다. 신축 시, 이들은 유럽풍 주택을 선호하였고, 기존 주택을 매입할 경우에도 내부 는 서구식으로 개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가구부터 식료품에 이르기 까지 각종 서양 물품을 주택 내에 비치하여 이를 기반으로 서구식 삶을 유지하였다. 선교사 주택이 선교사들에게 사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때로 전도의 목적으로 자신들의 주거공간을 조선인들에게 개방하였 다. 사택을 구경 온 조선의 일반 대중들은 서구의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의 결과물들을 직접적으로 목도하게 되었고, 이런 그들에게 선교사들은 서구의 물질적 번영을 기독교와 인과적 관계로 연결 시키며 포교를 시도하곤 하였다. 이 같은 시도와 노력으로 인해 개신교는 조선인들의 의식 속에서 경제적 힘이나 풍요와 연결되었고, 이렇게 형성된 물질적 이미지는 이후 선교 활동이나 교회 성장 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기독교와 물질문화의 연결은 때로 ‘라이스 크리스천’과 같은 문제를 일 으켰고, 더 나아가 기독교가 청빈보다는 풍요와 번영의 종교로 자리 잡게 되는 토대가 마련되기도 하였다. 선교사 주택과 그 안에서 재현되었던 서구식 삶의 모습이 기독교의 물질적 이미지를 구축 되는 데 있어 일정부분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II. 선교사 주택의 특징
III. 선교사택 방문
1. 사택의 구조와 물품
2. 사택 방문 경로 및 시기
3. 방문자들의 반응
4. 주택과 포교
IV. 부정적인 결과들
V.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키워드

근대성 서구 물질문명 개신교 초기 선교 선교사 주택 근대성의 전파 부와 번영의 종교 한국 교회 교회 성장 modernity Western material culture Protestant mission missionary house religion of wealth and prosperity Korean church church growth

저자

  • 이철 [ Lee, Chull |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숭실대학교 역사문물연구소(구 숭실사학회) [The Center for History and Human Heritage]
  • 설립연도
    1983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1983년에 조직되어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역사이론, 고고학, 미술사, 과학사 등 역사학과 인접학문의 우수한 논문을 폭넓게 소개하여 역사학 연구자들의 연구역량을 강화하고 회원 상호간의 긴밀한 교류의 장을 만들고자 조직하였다. 숭실사학회에서는 정기적인 학술발표 지속적으로 개최해 왔으며, 연 1-2회에 걸쳐 학술지 '숭실사학'을 발간해 왔다. 앞으로도 숭실사학회에서는 회원들의 연구 활동이 꾸준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보다 정기적인 학술강연회 및 월례발표, 단행본의 출간, 및 답사활동 등을 통해 보다 내실 있는 학회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숭실사학 [SOONG SIL SAHAK(The Historical Review of Soong Sil University)]
  • 간기
    반년간
  • pISSN
    2005-9701
  • 수록기간
    1983~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숭실사학 제45집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이 논문을 다운로드한 분들이 이용한 다른 논문입니다.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