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ese colonial era The Korean media was a pillar of the national movement. In particular, newspaper editorials were political writings that suggested the tone and direction of newspapers. Most of them, however, are hard to identify who wrote them. However, I was able to confirm the editorial that he contributed to the Dong-A Ilbo in his previous book. During the period from August 1925 to March 1930, he intensively published articles on Korean history and culture in the Dong-A Ilbo. As the editorial of Choe Nam-sun's name was confirmed in the mid- to late 1920s, the editorials related to Joseon history and culture in the Dong-A Ilbo of the corresponding period were analyzed as a whole. According to Choi Nam-sun's track record in the mid- to late 1920s, the process of "relationship" with the Dong-A Ilbo can be seen. There was no difference in the writings on Korean culture and history that Choi Nam-sun contributed to the Dong-A Ilbo and other media outlets. Therefore, he wanted to find a clue to 'differentiation' in the theory of culture of infidelity. The spatial consciousness of Oriental studies, Eastern culture, etc. was expanded in Korean-level thinking. Through this, there is a difference in position between the Dong-A Ilbo and Choi Nam-sun, who share the common exterior and inner circle of the "right wing of nationalism" of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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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 언론매체는 민족운동의 한 축이었다. 특히 신문 사설은 신문의 논조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치적인 글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은 누가 집필했는지를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남선의 전집에서 동아일보에 기고한 사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1925년 8월부터 1930년 3월까지의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동아일보에 조선 역사와 문화와 관련한 글을 발표했다. 이글에서는 1920년대 중후반 최남선의 기명 사설이 확인됨에 따라 해당시기 『동아일보』의 조선 역사와 문화 관련 사설을 전체적으로 분석했다. 1920년대 중후반 동아일보에 개제한 조선 역사와 문화 관련 글 분석을 통해 무기명으로 존재한 많은 사설이 이미 전집에 수록된 최남선의 글임을 확인했다. 구체적으로 동아일보 사설 「낙랑의 발굴물」, 「향토심의 퇴폐」, 「교과서의 개선」 등이 필자가 최남선이거나 그와 입장을 같이하는 글로 파악했다. 그리고 1920년대 중후반 동아일보와 최남선의 논리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했다. 1920년대 중후반 최남선의 행적을 보면 동아일보와의 ‘결연’의 과정이 병행됨을 볼 수 있다. 당대 최남선이 『동아일보』와 다른 언론매체에 기고했던 조선 문화와 역사에 관한 글에 차이점이 없었다. 따라서 ‘분화’의 단서를 「불함문화론」에서 찾고자 했다. 조선 단위의 사고에서 동양학, 동방문화 등의 공간 의식이 확대되었다. 이를 통해 당대 ‘민족주의 우파’란 공통된 외연과 내포를 지닌 동아일보와 최남선 사이에도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목차
Ⅰ. 서론 Ⅱ. 『동아일보』의 조선 역사·문화 관련 사설 Ⅲ. 최남선의 문화와 ‘조선학’ 관련 투고문 Ⅳ. 최남선의 조선 역사와 관련된 투고문 Ⅴ. 결론 <국문초록> <참고 문헌>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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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