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study is about the establishment, the time for extension, and the meaning of Jeolla-Gamyeong(a headquarter of the provincial governor.) In the late Goryeo Dynasty, 1388, Dogwanchalchulcheoksa(a provincial governor) was appointed in Jeolla-do for the first time, headquartered in Jeonju. So I suggest the time for the installation of Jeolla-Gamyeong is during the reign of King Taejong when a system of Gamyeong was established. It survived to the late Joseon Dynasty in Jeonju without moving to another town, unlike Gyeongsang-Gamyeong and Chungcheong-Gamyeon. After the founding Joseon Dynasty, the system operated according to Gamsa’s(a governor) deciding provincial administrations by moving Gamyeong(Haengyeong system,) Jeolla-Gamyeong too. So, before the Japanese Invasion of Joseon in 1592, there was no Gamyeong facilities including Seonhwa-dang(a Gamsa’s office.) Gamsa decided provincial government in Jeonju Gaeksa(a hotel when he stopped over in Jeonju.) After the Invasion, it was starting for Gamsa to conduct administrations in Gamyeong temporarily for financial problem(Yuyeong system.) This system was operated in Jeonju from 1652 to 1664 for the first time. It is connected to other systems, long-term tenure(Guim system,) appointing to an office with the whole family(Deolgwan system,) and concurrent magistracy(Gyeommok system.) In 1669, it was finally realized in areas south of two military border districts(Yanggye) on the basis of the test operation of Jeolla-Gamyeong and the wealth of material through the various tax collections. Jeolla-Gamyeong was at the leading edge of this system. As it was enforced, it started to build Gamyeong facilities. The facilities of Jeolla-Gamyeong were too established under the system. We can find the figure of it to an old map of Jeonju in existence.
한국어
이 글은 전라감영(全羅監營)의 설치와 확대 시기, 그 내용과 의미 등을 살 펴본 것이다. 고려말 1388년 안찰사제(按察使制)를 도관찰출철사제(都觀察黜陟 使制)로 개편하면서 전라도에도 도관찰출척사가 임용되기 시작하였다. 고려말 전라도관찰사 본영(本營)은 전라도안찰사영에 이어 전주에 설치되었다. 전라감영의 설치시기는 고려말에서 조선초 과도기를 거쳐 감영제(監營制) 가 확립된 태종대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전라감영은 경상감영, 충청감 영과 달리 임진왜란 후에도 다른 읍으로 이전하지 않고 조선말까지 전주에 존속되었다. 조선건국 후 감영제는 감사(監司)가 일도(一道)를 순행하며 도정(道政)을 처 결하는 행영제(行營制)로 운영되었다. 전라감영도 행영제로 운영되었다. 따라 서 임진왜란 이전에는 감사의 집무처 선화당(宣化堂)을 비롯하여 별도의 감영 시설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라감사가 전주에 머물 때는 전주객관(全州客官)에 거처하면서 도정을 처결하였다. 감사가 감영에 머물며 도정을 처결하는 유영제(留營制)는 임진왜란 이후 부분적이고 임시적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다가 전라감영에서 1652년(효종 3)부 터 1664년(현종 5)까지 겸목구임(兼牧久任)을 통한 유영제를 제도화 하기 위한 차원에서 10여 년간 처음으로 시험 운영하였다. 유영제를 전라감영에서 시범 운영한 것은 재정적 여력에 기인한 것이었다. 유영제는 구임제(久任制)·설권제(挈眷制)·겸목제(兼牧制)와 연계되어 있는 체제이다. 1657년(효종 8) 대동미에 영수미(營需米)를 마련하여 물적 기반을 구축하고, 전라감영에서의 시험 운영을 기반으로 1669년(현종 10)에 마침내 양계지역 이남에 이러한 유영제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전라감영은 유영제 가 처음 설치된 곳으로 유영제 개편의 선도적 위치에 있었다. 유영제가 되면서 선화당을 비롯하여 감영시설이 건립되기에 이르렀다. 전 라감영의 관아시설들도 유영제하에서 건립된 것들이다. 전라감영 선화당도 선조 때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전주부 고지도에 등장하는 전라감영은 유영제하의 전라감영이다. 전주는 통일신라 이래 전라도 내지 전북권의 중심지로서 위상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전라감영은 전주 정체성의 상징적 존재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전라감영의 설치와 행영제 1. 도관찰출척사로 개편과 전라도 2. 감영제의 확립과 전라감영 설치 3. 행영제 하의 전라감영 운영 Ⅲ. 유영제로 개편과 전라감영 확대 1. 유영제로의 개편 논란 2. 유영제의 정착과 전라감영 3. 전라감영의 관아시설 건립 Ⅳ.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 문헌>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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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