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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宮庭) 나례(儺禮)의 지속성에 관한 궁구(窮究) -내농작(內農作)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A study for the persistency of Royal court Narye compared with Naenong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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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국악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국음악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2집 (2012.12)바로가기
  • 페이지
    pp.251-270
  • 저자
    윤아영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8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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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Narye was a royal court ceremony that had been proposed of abolition persistently. However, Narye had long been lasted from the late Goryo to the mid Joseon dynasty, for about 700years. This long lasting persistency of Narye must have been caused by something uniqueness that compared with Naenongjak.Royal court Narye and Naenongjak were both performed by clowns, so they were very unique court cultures that had been argued of abolition by retainers in those days. They asserted that those two court cultures were too playful to inappropriate as the royal court culture.However, royal court Narye was longer lasted than Naenongjak and that was recorded to the text book Ahkahkguibum as a court culture, in differ to this.Royal court Narye had the inherent character that it was performed in the year-end days as a court ceremony. Besides this inherent character, royal court Narye had very dynamic and inventive characters. Naenongjak had focused to the realism of agricultural affairs and silk yarn, on the contrary Narye had no detail structures of performance except to the rule of circuses by clown’s. Therefore, the contents of Narye was very various and more humorous than Naenong’s.Also, the absence of luxurious stage settings seemed to make Narye to persist for the long time compared with Naenongjak. The realism as Naenongjak’s essence had resulted in rare and luxurious stage settings as a side effect. On the other hand, Narye had no need for the stage setting on a large scale, and it was performed rather simple than other royal court ceremonies performed in the court yards.The side of conventionalization, royal court Narye had a serial formalities that consisted with a harmonious court hierarchy of king and his subjects, a royal banquet and a king’s gift to the poor people, on the contrary, Naenongjak had not.For the last thing, on the side of the royal court music, royal court Narye had been accompanied with dances and musics performed by a music director, court musicians, an official Kisaeng, singing children, and dancing children, while Naenongjak hadn’t. Therefore, royal court Narye was recorded to the royal text book Ahkhakguibum to the contrary Naenongjak wasn’t. So, only Narye had been long lasted with a authority, and this fact has been revealed in comparison to Naenongjak’s example.As a result, the persistence of royal court Narye that had been lasted from the late Gorye to the mid Joseon dynasty seems to be caused by its sense of humor, a dynamic, inventive and thrifty character, and the conventionalization and with authority.
한국어
궁정 나례는 조선시대 내내 희완(戲玩)의 것으로서 폐지논의가 꾸준히 제기된 궁중 의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궁정나례는 매년 폐지되지 않고 약 700여년간 지속될 만큼 자생력 및 지속성을 갖고 있었던 궁정문화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지속력이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이와 매우 유사한 연행형태를 갖추었던 내농작(內農作)과 비교해서 찾아 보았다. 궁정 나례와 내농작은 궁중 후원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동일한 연희자인 광대들에 의해 연출되었던 궁중 문화였다. 특히나 이의 연출을 담당했던 이들이 광대였기에, 희완으로 간주되어 폐지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특수한 두 개의 궁중문화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나례와 내농작은 그 지속시기 및 왕실문헌 기록화 등의 측면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궁정 나례의 지속성은 그 연행시기가 세말(歲末)이라고 하는 폐지될 수 없는 시기적 특수성을 가졌던 점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내재적 특성 외에도 궁정 나례는 매우 역동적이고, 창의성이 가미된 궁정문화였다. 내농작이 정해진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는 사실주의적인 연출에 초점을 맞춘 반면, 나례는 광대들의 각종 재주를 펼쳐보인다는 큰 틀 외에는 세세하게 지정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공연 내용은 매우 다채로웠으며, 특히나 내농작보다는 해학적 요소가 훨씬 가미된 것이었다. 또한 이처럼 연출의 자율성에서 기인하는 무대장치 사치성의 부재(不在)는 더욱더 나례의 지속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나례와 달리 내농작은 사실주의적 연출에 국한되었기에 각종 무대장치를 희귀하고 화려한 것으로 치장하는 것에 경쟁적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 나례는 무대장치라고 할 만한 것이 크게 요구 되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궁정문화보다도 더욱 간소하게 후원에서 펼쳐졌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식화(樣式化)라고 하는 측면에서도 살펴보면, 궁정 나례가 군신간의 화합을 도모하고, 연회를 베풀고 춥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하사(下賜)를 하는 등의 일련의 절차를 갖추었던 반면, 내농작은 이와 같은 일련의 절차가 완성되지 않았다. 또한 궁중악(宮中樂)의 수반이라고 하는 면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궁정 나례는 악사(樂士), 악공(樂工), 여기(女妓), 가동(歌童), 무동(舞童) 등이 참여한 시가무(詩歌舞)가 수반되었던 데 비해 내농작에는 이와 같은 궁중악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예악 규범서에는 궁정 나례만이 수록되어 후세에 전거(典據)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것이 지속력의 한 요소가 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자생력의 원인은 이와 유사한 내농작이 양식화 및 기록화의 전철을 밟지 못한 것에 비견되어서도 알 수 있는 점이다.결국, 궁정 나례의 지속성은 이와 같은 시기적 이점을 비롯해, 해학성, 역동성, 창의성, 검박성 및 양식화로 인한 기록화 등이라는 요소로 인해 고려말부터 조선후기까지 지속될 수 있는 힘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본문
1. 궁정(宮庭) 나례(儺禮)와 내농작(內農作)의 연행 방식 및 독창성
2. 궁정(宮庭) 나례(儺禮)의 역동성, 해학성, 검박성
3. 궁정(宮庭) 나례(儺禮)의 양식화 및 󰡔악학궤범󰡕 수록
Ⅲ. 맺음말
Abstract

키워드

나례 내농작 자생력 󰡔악학궤범󰡕 고려왕조 조선왕조 광대 역동성 해학성 창의성 검박성 양식화 Royal court Narye Naenongjak the persistence of royal court Narye Ahkhakguibum Goryo dynasty Joseon dynasty clowns a sense of humor a dynamic character a inventive character a thrifty character the conventionalization

저자

  • 윤아영 [ Yoon, Ah-Young |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국악학회 [Korean Musicological Society]
  • 설립연도
    1948
  • 분야
    예술체육>음악학
  • 소개
    한국국악학회는 국악을 연구하여 음악학 및 민족음악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1948년 4월 봄에 이혜구, 장사훈, 성경린, 이주환 외 15명의 발기로 발족하여 1963년 12월 14일 사단법인체로 인가취득한 이래 1) 국악의 연구발표 2) 국악 관계자료서 수집 3) 국악에 관한 전시회 및 강연회 개최 4) 국악에 관한 출판사업 5) 국내의 학계간 교류 등의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본 학회는 국악의 연구발표를 4000여회에 가까운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20회에 걸친 국악기 및 국악서적 전시회를 열고 3회의 신국악작곡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특히 학회에서는 1971년 한국음악연구 제1집을 발간한 이래 현재 제45집 출판에 이르렀으며, 30여종의 고악보 간행, 이혜구 박사 송수기념 음악학 논총, 장사훈 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 등 30여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또한 1989년 제1회 국악학 전국대회를 열어 한국음악의 쟁점이 되는 주제를 선정하여 전국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75년 한·일간의 고려악 연구회를 발족시켜 일본의 음악학자들과의 공동연구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으며, 1981년에는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서울대회를 치뤄내고, 1994년에는 제1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서울에서, 1999년에는 제6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수원에서 성황리에 치뤄내는 등 외국학회와 교류에 힘써왔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국음악연구 [STUDIES IN KOREAN MUSIC]
  • 간기
    반년간
  • pISSN
    1975-4604
  • 수록기간
    1975~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679 DDC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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