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원래 占書에서 비롯된 것이나 근본적으로는 음양강유의 상반된 두 요소의 상호작용을 통한 변화의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변화의 철학서이다. 『주역』에서의 일체 사물은 끊임없이 생멸을 반복하는 우주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 함께 同流하면서 존재한다. 따라서 어떠한 사물도 생성소멸을 반복하는 우주변화의 흐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과정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며, 인간의 존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주역』에서는 만물의 생성변화를 천지음양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한다. 이런 『주역』의 관점에 의거하여 볼 때 인간의 생성 역시 다른 사물과 마찬가지로 천지음양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 우연적 산물이며, 우주의 변화에 동류하는 과정적 존재라는 점에서 유한성을 지닌 필연적 존재에 불과하다. 인간 존재의 본질적 속성에 우연성과 필연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여타의 사물과는 달리 자의적 행위나 의식적 선택 등을 통해 자신 존재 속에 내재된 우연성과 필연성을 초월하여 자기가 지향하는 숭고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고 실천할 줄 아는 자기 창조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역』에서는 하늘과 땅과 인간의 도리가 두루 갖추어져 있으므로 성인이 이를 이용하여 천하 만민이 바라는 바를 알게 되고, 천하의 과업을 성취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우리 인간이 乾道변화의 과정 중에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명에 의거하여 仁義를 바탕으로 음양의 하늘과 剛柔의 땅과 더불어 만물화육에 동참함으로써 우주 경영의 한 주체가 된다고 강조한다. 『주역』 乾卦 「文言傳」에서는 ‘천지와 같은 德과 日月과 같은 밝음을 가지고’, 천지의 덕을 몸소 실천하는 이상적인 인격을 ‘大人’이라고 부른다. ‘대인’은 욕망의 ‘小我’ 세계를 뛰어 넘어 덕성 상으로는 이미 天人合德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이 ‘대인’이야말로 창조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물리적 우연성과 필연성의 한계를 초월하여 자기 창조를 성취한 자아실현의 극치인 것이다. 이러한 자아실현의 성취에서 우리는 인간의 고귀한 삶의 존엄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주역』을 이용한 점서가 사람들의 불안과 의혹을 해소시켜 정서적 위안과 심리적 안정을 갖게 하고, 『주역』에 담겨 있는 많은 생활상의 지혜가 사람들로 하여금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역』의 역할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의 해소와 정서적 위안 및 심리적 안정 등을 제공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 『주역』은 근대의 물질문명이 초래한 인간소외, 자아상실 등의 각종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방안 모색에 해결의 단초를 제공하는 새로운 인문학적 과학으로서의 『주역』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