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송 시기에 발생한 주자와 육상산 사이에 발생한 논쟁은 중국철학발전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주자와 육상산 이전까지 학술의 논쟁 주체가 유가와 불가였다면 朱陸의 학술이 본격적으로 대립하자 불교가 논쟁의 주체에서 탈락하고 유가철학과 유가철학의 논쟁으로 변화되었다. 주자철학에 대한 양명의 비판은 주자와 육상산 철학 논쟁(朱陸之辨)의 제 2막이라고 할 수 있다. 주륙지변과 명대에 발생한 양명과 주자학자 사이에 전개된 학술논쟁이 바로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리학과 심학 논쟁의 근원이다. 이러한 논쟁은 학술발전사에서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왔지만, 그 역작용도 결코 적지 않다. 주륙의 후학들은 상대방 학술의 정면적 가치를 긍정하지 않고 이단으로 규정하고 심지어 정치적 박해도 가하였다. 리학과 심학 논쟁에서 리학이 다수를 차지하였기 때문에 일반적 현상은 리학이 공세를 취하고 심학이 방어적 자세를 취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명대 중말기에 등장한 왕양명은 오히려 리학에 대하여 공세적 자세를 취하면서 학술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주자철학에 대한 양명의 비판은 당시 주자철학자들을 경각시키기에 충분하였지만, 그 역시 주자철학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곳에서 주자철학을 무고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바로 ‘비판의 올바르지 못함’에 초점을 두고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