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민족에 대한 죄와 벌 - 여진인 莽哈을 중심으로 -
Crime and punishment against other ethnic group in Joseon - Focused on Jurchens Manghap(莽哈) - 조선시대 이민족에 대한 죄와 벌 - 여진인 망합을 중심으로 -
Manghap was Seongjeoyain(城底野人) who lived in Tumen basin. They positively cooperated with Joseon for their policy for Jurchens, so the Jurchens grew politically with public office assigned. They depended upon Joseon economically. Instead Manghap reported situation of Jurchens to Joseon, kept other Jurchens from invading against Joseon, and often made send back captive Joseon people. Manghap followed the army to conquer Jurchens and had to invade other Jurchens. As a result, Manghap became excellent and powerful chief, being recognized by Joseon. But as Manghap grew, they tended to break away from Joseon. Manghap started to reject support for Joseon, or not to follow commander of Joseon in border area. This was caused by Manghap's arrogant mind. In the middle times of Joseon, economic situation in Six garrisons(六鎭) of Hamgyeongdo became impoverished. On the contrary, economic development of Jurchens in Tumen basin was better than Six garrisons. In the end, Manghap were exile to Jindo(珍島) in Jeollado by the crime to give damage on national prestige of Joseon-they acted rudely and beat interpreter. Manghap had stayed in Jindo at least 11 years. In Joseon. It was usual to punish generously against their rudeness because they were accepted as Oii(外夷) in Joseon. But punishment of Manghap had a different aspect from existing usual cases. Based on their social and economic development, Jurchens in Tumen basin to support Joseon frequently played the bully, complaining that public office and goods assigned from Joseon were not satisfactory. However, Joseon did not fully understand such social and economic situation. Joseon thought that complaint and misconduct of the Jurchens gave damage on national prestige of Joseon. Accordingly, because Joseon wanted to maintain continuous control and influence on Jurchens who lived in Tumen basin as before, punishment against Manghap was made.
한국어
莽哈은 두만강 유역에 거주하였던 城底野人으로, 조선의 대여진정책에 적 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조선의 관직을 받으며 정치적으로 성장하였다. 그 대신 망합은 조선에 여진인들의 정세를 보고하고, 조선을 위협하는 여진인들의 침 입을 막으며, 피로된 조선인들을 송환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망합은 조선의 여진 정벌에 종군하여 조선을 침입한 여진인들을 공격하는데 나서야만 했다. 망합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두만강 유역에서 강력한 추장으로 성장하였으며, 조선으로부터 ‘걸오한 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망합은 성장을 거듭할수록 조선으로부터 이탈하려는 경향을 보였 다. 망합이 조선에 대한 내조를 거부하거나, 조선 변장의 명령을 듣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망합이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은 조선에 대해 정치·경제적으 로 ‘오만한 마음’을 품은 결과였다. 조선 중기 함경도 6진 지역의 경제적 상 황은 피폐해지고 있었고, 반대로 두만강 유역 여진인들의 경제적 발전은 6진 지역을 뛰어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상황과 더불어 정치적으로 성장 한 망합은 점차 조선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망합은 조선에 내조하였다가 무례한 행동을 하고 통사를 구타하여 조선의 국위를 손상시켰다는 죄로 전라도 珍島에 유배되었고, 진도에서 최소 한 11년 이상 거주하였다. 조선에서는 여진인들을 外夷로 여겨 그들의 무례 한 잘못에 관대하게 처벌하는 것이 常例였지만, 망합의 처벌은 기존의 상례 와는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조선인과 여진인들의 경제적 역전 현상은 조 선에 내조한 여진들의 불만을 초래하기 시작하였다. 여진인들이 조선으로부 터 하사받은 관직과 물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행패를 부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이러한 사회·경제적인 상황에 제대로 대처 하지 못하면서도, 여진인들의 불만과 행패가 조선의 국위 손상을 불러일으키 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망합에 대한 처벌은 조선이 두만강 유역에 거 주하였던 이민족이었던 여진인들에 대한 지속적인 통제와 영향력을 예전처럼 유지하고자 하였던 시도 중 하나였다.
목차
I. 머리말 Ⅱ. 망합의 성장과 조선과의 관계 Ⅲ. 망합에 대한 처벌과 영향 Ⅳ.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문헌>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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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