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article examined the activities of Mandang Lee Hye-gu in the Japanese music academy through personal exchanges and academic activities. Mandang began interacting with Japanese music academia in 1941 after meeting with Kishibe Shigeo. Mandang and Hayashi Kenzo had many things in common in academic interests and research methods. Kishibe and Hayashi dedicated their articles to Mandang’s 60th Anniversary book and continued academic exchange. Mandang was the first Korean to speak at the Society for Research in Asiatic Music. He published papers comparing Japanese music with Korean music in the journal and introduced Korean musicology to the Japanese academic community since the late 1950s. He introduced foreign scholars to the Korean Musicological Society from 1959, and from 1976 he led the Komagaku Research Society for the purpose of joint research of Korean-Japanese music. This movement of Mandang had a considerable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Korean musicology in Japan. Mandang was the history of the exchange of living Korean-Japanese music that continued communication from the first generation to the third generation of the Japanese music academy. His overseas exchange activities were the driving force for Korean musicology to grow internation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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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만당(晩堂) 이혜구(李惠求)의 일본음악학계에서의 행적을 인적 교류와 학회 활동을 통해 살펴보았다. 만당은 1940년대 초부터 일본음악계와 학술 교류를 시작하는데 이는 그가 실천한 최초의 해외음악계와의 교류였다. 친밀하게 소통한 일본음악학자는 기시베 시게오(岸邊成雄)와 하야시 겐조(林謙三)이다. 만당은 기시베와 1941년에 처음 대면한 이후 그의 주선으로 일본음악학계에 첫 논문 「양금신보의 사조에 관하여」를 발표하고, 1970년대 중반 함께 고려악연구회를 발족하며 1980년대 중반까지 친교를 나누었다. 또한 만당과 하야시는 학문의 관심 분야와 고악보를 통한 음악분석이라는 연구방법에서 공통점이 많아 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기시베와 하야시는 만당을 위해 그의 송수기념논문집(1969)에 글을 헌정하며 학술적 교류를 이어갔다. 만당은 1943년 이전에 일본 동양음악학회에 가입하여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특별강연회(1959)를 갖고 동 학회 학술지에 일본 고려악 <나소리>를 한국 “구나의 소리”로 해석한 논문(1965)을 게재했다. 또한 조선학회 학술지에 한국의 좌․우방악과 일본의 좌․우방악을 비교한 논문(1961)을 수록하고, 기악과 산대극의 비교 연구를 구두 발표(1968)와 논문(1969)으로 집필하는 등 1950년대 말부터 일본학계에 한국음악학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일본음악계에서 만당의 명성은 1970년대 초에 이미 널리 알려져 한국 음악학자로는 최초로 일본의 표준음악사전에 등재되었다. 그가 추구했던 국제 교류는 한국국악학회와 고려악연구회의 활동을 통해서도 구현되었다. 1959년부터 해외 학자들을 한국국악학회에 소개하여 연구와 정보를 교환하는 장을 만들어나갔고, 1976년부터 한일음악의 공동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고려악연구회를 이끌어갔다. 이러한 만당의 행보는 일본에서 한국음악학이 전개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만당은 일본음악학계의 제1세대부터 제3세대에 이르기까지 학문적 소통을 이어간 살아있는 한일음악교류의 역사 그 자체였다. 그의 해외교류 활동은 한국음악학이 국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음에 틀림없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만당과 일본음악학자의 교류 1. 만당과 기시베 시게오 2. 만당과 하야시 겐조 Ⅲ. 만당의 일본 학회 활동 1. 동양음악학회 활동 2. 조선학회 활동 Ⅳ. 만당이 주도한 한일음악 교류 1. 한국국악학회를 통한 교류 2. 고려악연구회를 통한 교류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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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악학회는 국악을 연구하여 음악학 및 민족음악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1948년 4월 봄에 이혜구, 장사훈, 성경린, 이주환 외 15명의 발기로 발족하여 1963년 12월 14일 사단법인체로 인가취득한 이래 1) 국악의 연구발표 2) 국악 관계자료서 수집 3) 국악에 관한 전시회 및 강연회 개최 4) 국악에 관한 출판사업 5) 국내의 학계간 교류 등의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본 학회는 국악의 연구발표를 4000여회에 가까운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20회에 걸친 국악기 및 국악서적 전시회를 열고 3회의 신국악작곡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특히 학회에서는 1971년 한국음악연구 제1집을 발간한 이래 현재 제45집 출판에 이르렀으며, 30여종의 고악보 간행, 이혜구 박사 송수기념 음악학 논총, 장사훈 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 등 30여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또한 1989년 제1회 국악학 전국대회를 열어 한국음악의 쟁점이 되는 주제를 선정하여 전국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75년 한·일간의 고려악 연구회를 발족시켜 일본의 음악학자들과의 공동연구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으며, 1981년에는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서울대회를 치뤄내고, 1994년에는 제1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서울에서, 1999년에는 제6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수원에서 성황리에 치뤄내는 등 외국학회와 교류에 힘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