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article is about the relationship and influence of Manhae Han Yong-un in the life of Gyeongbong, a high-ranking official of Tongdosa Temple. So far, there has been a lot of research on Gyeongbong's life and prehistoric images. But the study of Han Yong-un in his life has not deepened. Therefore, in this article, I want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Gyeongbong and Han Yong-un by looking at the flow of life and personality of Gyeongbong's life. Therefore, in this article, we would like to pay attention to the relevance of Han Yong-un to the outline, flow, and character of Gyeongbong's national thought. To this end, I would like to take note of the following aspects. First, pay attention to the flow of the times when Gyeongbong lived. At that time the nation was ruined, and the existence of the people was at stake. So Gyeongbong must have been interested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national movement. Second, while serving as the head of Tongdosa Temple, Gyeongbong thought a lot about Buddhism, the nation, and the independence movement. He wants to uncover his ethnic movements, which he agonized over while taking various steps. Third, Gyeongbong revealed his ethnic ideas by having ties with Jang Ji-yeon and Han Yong-un. In particular, various meetings and ties with Manhae deepened his ethnic ideas. Fourth, Gyeongbong implemented national ideas while serving as the director of the Seonhakwon, and in charge of the construction of Han Yong-un monument. As such, Kyungbong has left various ethnic moves in history. It is hoped that this article will help us understand the life and thoughts of Gyeongbong, the modern history of Tongdosa Temple, and the succession of Manhae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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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통도사 고승인 경봉의 삶에서 만해 한용운과의 인연, 영향 등 에 대해 살핀 글이다. 지금껏 경봉의 생애, 선사상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 가 있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서 한용운에 대한 연구는 심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경봉의 삶의 흐름, 성격 등을 만해 한용운과의 관 련성에 유의하여 살피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측면을 유의하여 살피고자 한다. 첫째, 경봉이 살았던 시대의 흐름을 유의한다. 그 당시는 나라가 망하고, 민족 존립이 위태로왔다. 그래서 경봉은 독립운동, 민족운동에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둘째, 경봉은 통도사 주지를 역임하면 서 불교, 국가, 독립운동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였다. 다양한 행보를 가 면서 고민한 그의 민족적 행보를 들추어내고자 한다. 셋째, 경봉은 장지연, 한용운과 인연을 가지면서 그의 민족사상을 드러냈다. 특히 만해와의 다양 한 만남 및 인연은 그의 민족적 사상을 심화시켰다. 넷째, 경봉은 조계사 건설에 협조, 선학원 이사장으로 활동, 한용운 비석 건립의 책임자 등을 역임하면서 민족사상을 구현하였다. 이처럼 경봉은 다양한 민족적 행보를 역사에 남겼다. 이 글이 경봉의 생애와 사상, 통도사의 근대사, 만해사상의 계승 등의 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