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per examines the aspects of religious activities and assistant activities through the temple fraternities of Okcheon-sa Temple. Starting with the Gap-gye(甲契) in 1744, more than 17 different temple fraternities were active in this temple, including the Bulyu-gye(佛油契) in 1816, the Ji-gye(紙契) in 1820, the Jijang-gye(地藏契) in 1862, the Ingyanggye(印經契) in 1867, the Chilsung-gye(七星契) in 1894, and the Jangdeung-gye(長燈契) in 1906. In the difficult reality of the Joseon Dynasty, many temple fraternities supported the temple's finances and played a valuable role in uniting the faith.The Gwaneum-gye(觀音契) was an important example of the fact that the temple community is not a fossil in history but a religious activity that is still alive until recently. Okcheon-sa temple had 17 temple fraternities from 1744 to 1970. It continued religious activities and assistant activities for temples for 230 years. The fact that various temple fraternities were prevalent shows the fact that the finances of the temple were difficult. This is because they form a temple fraternities to overcome their economic shortfalls. However, from historical examples, it is actually the opposite. In other words, In other words, it can be interpreted that a temple with developed temple fraternities is likely to become as rich as it is. Okcheon-sa operated a Buddhist academy based on many temple fraternities and they also made efforts to nurture talented people by sending students to Japan as well as Seoul. Later, they donated the founding fund of Pusan National University. It was possible because such temple fraternities existed at the base of Okcheon-sa's social and educational proj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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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의 사찰계를 통해 절의 보사활동과 신앙활동의 양상을 살펴보고 계가 지니는 위상을 가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옥천사에서는 1744년의 갑 계를 시작으로 1816년의 불유계, 1820년의 지계, 1862년의 지장계, 1867년 의 인경계, 1894년의 칠성계, 1906년의 장등계 등 17개 이상의 다양한 사 찰계가 활동하였다. 조선시대 어려웠던 현실에서 많은 사찰계가 활동하면 서 절의 재정을 지원하였고, 신앙심을 결속하는 소중한 역할을 하였다. 특 히 관음계는 1970년까지 존속하면서 사찰계가 역사 속의 화석이 아니라 최근까지도 살아 숨쉬는 신앙활동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 다. 옥천사의 사찰계 17건을 보사활동과 신앙활동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 는데 보사활동으로서 시왕도 조성, 향로 봉안, 등촉 시주, 종이 생산, 칠성 과 신중 봉양, 전답 시주 등에 이르는 다양할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앙활동으로서 만일계에서는 매일 네 번씩 아미타불을 염송하는 등의 염 불신앙을 고취하였다. 한 사찰에서 다양한 계가 성행하였다는 것은 사실 사찰의 재정이 어려 웠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경제적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계를 결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적 실례에서 보면 사실은 그 반대이다. 즉 계가 번 성한 사찰은 그만큼 부찰(富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옥 천사는 사찰계를 기반으로 불교전문강원을 운영하였고, 서울은 물론 일본 까지 유학생을 보내는 등 인재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후 부산대학교 의 설립기금을 기증하는 등 옥천사의 사회·교육사업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사찰계가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