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per presents a review into the triennial examination, an examination for Buddhist monks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triennial examination was implemented in the same form as the civil examination. There was a talent test, covered Heart Sutra, Vajira Sutra, and Saldalta. The successful candidates of the test were called pre-successful candidates of the triennial examination. The pre-successful candidates of the minor civil examination were qualified for Seonsih. In the triennial examination, the first examination was taken to select 100 entrance candidates for each Zen and Science Buddhism. In the midterm examination the following year, another round of tests was conducted to cover Jeondeungrok and Seonmunyeomsong in Zen Buddhism and Hwaeomgyeong and Sipjiron in Science Buddhism and 30 students were selected, to be called grand candidates. The grand candidates would take the final examination, after which the middle virtue equivalent to the 6th base was issued. Measures were taken to forbid certain individuals from becoming a monk including the triennial examination, the monastic identity tags issued to those who paid a sum of money for the compensation of forced military duties. King Sejo, however, granted qualification for a Buddhist monk to lowly people as well. As a result, the number of Buddhist monks with a monastic identity tag increased. This was used as a pretext to abolish the triennial examination The monastic identity tags was suspended in the 20rd year of King Seongjong's reign. The provision of from becoming a monk was removed in Taezonsokrok promulgated in the 23th year of his reign. The triennial examination, however, lasted until 1504 even in the atmosphere of forbidding certain individuals from becoming a mo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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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승과(僧科)인 선시(選試)가 과거(科擧)와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 었음과 함께, 선시의 형식 및 혁파에 이르는 과정을 검토하였다. 승과의 경우, 생원ㆍ진사과의 예로서 『경제육전』에 따른 시재행(試才行)이 행해졌으며, 『경국대전』 「도승(度僧)」 조에 따라 『심경』, 『금강경』, 『살달타』의 송경 및 「명칭가곡」의 송(誦)을 시험해 입격자를 중격자(中格者)라 칭했다. 중격자는 정전(丁錢) 납부 후 백패(白牌)에 준하는 도첩을 발급받 았다. 도첩식 중 도첩 수급자를 학생(學生)이라 명기한 예는 도첩승이 소과(小科) 입격에 해당한 자를 뜻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소과 입격자인 중격자는 대과에 해당하는 선시를 치렀다. 선시는 초시 를 통해 양종 각 100명씩을 뽑아 입선(入選)이라 칭했으며, 이듬해 복시 때 선종은 『전등』ㆍ『염송』을, 교종은 『화엄경』 「십지론」을 시험해 양종 각 100명 중 ⅓ 정도에 해당하는 30인씩을 대선(大選)으로 뽑았다. 이어 대선 을 대상으로 한 중시를 치러 6품에 해당하는 중덕(中德)과 7품 내지 8품 등 품계를 주었으며, 홍패식의 예에 따라 교지를 발급하였고, 중덕이 주지 로 임명될 경우 6품의 예에 따라 고신교첩을 발급했음을 서술하였다. 한편 선시 실행과 정전 납부 후 도첩을 발급한 예, 도승 자격을 양반자 제로 한정한 예는 선시가 금승(禁僧)의 예로써 시행된 것임을 말했다. 그런데 세조 연간에는 호불의 경향 속에 공사천(公私賤)에게까지 도승 자격 을 부여했으며, 승인호패법과 부역을 통해 도첩승이 증대되었던 바, 이는 이후 성종 및 연산군대에 선시 폐지 및 도첩제 정지, 양종 혁파의 빌미가 되었음을 말했다. 이후 성종 20년 도첩 발급을 금지하였고, 성종 23년 반포된 『대전속록』 에 ‘도승’ 조항이 삭제되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1504년까지는 선시가 시행되었으며, 중종 즉위 2년(1507) 식년에 선시가 더이상 시행되 지 않았던 예를 기술하였다.
목차
한글요약 Ⅰ. 緖言 Ⅱ. 조선의 승과, 선시(選試)의 형식 Ⅲ. 선시와 등계(登階) Ⅳ. 승인호패법(僧人號牌法)과 선시의 폐지 Ⅴ. 결어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Examination for Buddhist MonksTriennial ExaminationMonastic Identity TagTwo Denomination僧科選試禪科度牒名稱歌曲兩宗大選
저자
문상련(정각) [ Moon, Sang leun(Ven. Jung Gak) | 중앙승가대학교 불교대학 교수 ]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