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상징적 예술 형식에서 숭고 개념에 관한 연구 - 칸트, 리오타르, 지젝과의 연관성과 차이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Concept of Sublime in the Symbolic Art-Type of Hegel’s Aesthetics -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and Differences with Kant, Lyotard, and Žižek -
In the aesthetic history of sublime, Hegel is not the key, and as it comes to contemporary times, it is more often referred to as the opposite. However, in Hegel’s aesthetics, the concept of sublime is a major category of symbolic art-type characterized by a disharmony of meaning and expression, and recently it is newly considered with the concept of negativity and nothing. Sublime from ancient Greece has played a role in complementing the limits of logos or classicism. When it reaches Burke through the rhetorical sublime of Longinus, the sublime is organized into intense emotions combined with pain and pleasure, triggered by disordered and informal objects, and embodied by Kant’s mathematical and mechanical sublime. Kant’s sublime is a manifestation of the undefined concept of reason, which occurs when the imagination associates the concept of reason with an object outside the category of understanding. Hegel defines art as the unity of the idea (Idee) and the configuration (Gestalt), that is, appearance (Schein). The symbolic art-type is a step in which the content and form of art do not coincide. Here, art remains with an ‘incomplete’ or ‘insufficient’ appearance that has not fully realized the idea. Hegel seeks the typical models of symbolic art in Egyptian and Eastern religious arts and literature, allegories and allegorical expressions. The genre is an architecture in which material properties act as a limit to the realization of mentality. Hegel’s concept of sublime means the disharmony between the content and form, that is, the idea and expression of the symbolic art-type. Therefore, it is related to the general art of contemporary art, which mainly expresses the disagreement between the meaning content and the object of expression. Lyotard pays attention to Kant’s sublime and finds the possibility of contradictory attempts to describe what cannot be described, that is, beyond what he perceives. On the other hand, Žižek reinterprets Hegel’s concepts of negativity and nothing, revealing that ‘thing-in-itself’ is in fact a fundamental negativity, that is, what exists beyond the representation is ‘pure nothing’ rather than ‘thing-in-itself’. Through this, Kant’s sublime, that is, the ‘thing-in-itself’ experienced through the disagreement between the subject and the object, is diagnosed as a composition of nothing, thereby creating a pathway to reinterpret Hegel’s subl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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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의 미학사에서 헤겔은 핵심 인물로 평가되지 않은 것은 물론, 현대로 올수록 그 반 대편 인물로 더 많이 언급된다. 그러나 헤겔 미학에서 숭고 개념은 의미와 표현의 불일치를 특징으로 하는 상징적 예술 형식의 주요 범주이고, 근년 들어 부정성이나 무 개념과 함께 재조명되고 있다. 숭고는 고대 그리스의 ‘탈아’나 ‘망아’ 등에서 기원하여 로고스적 합리성이나 고전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 롱기누스의 수사학적 숭고를 거쳐 버크에 이르면, 숭고는 무질서하고 무형식적인 대상에서 촉발되는, 고통과 쾌락이 결합된 강렬한 감정으로 체계화되고, 칸트의 수학적․역학적 숭고로 이어진다. 칸트의 숭고는 ‘현시할 수 없는 것의 현시’로서, 오성의 범주를 벗어나는 대상을 상상력이 이성 개념과 연관시켜 일어나는 무규정적 이성 개념의 현시이다. 헤겔 미학에서 숭고는 상징적 예술 형식의 주요 범주를 이룬다. 헤겔은 예술을 이념의 구현으로서 가상으로 규정하고, 예술 형식 또한 이념(내용)과 형태(형식)의 통일(구현)인 가상의 정도에 따라 구분한다. 상징적 예술 형식은 내용과 형식이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가상으로서 예술, 예컨대 이집트나 동방의 종교적 예술과 문학, 알레고리나 비유적 표현들이 전형을 이루며, 장르로는 재료적 특성이 정신성의 구현에 한계로 작용하는 건축이 대표적이다. 헤겔의 숭고개념은 상징적 예술 형식이 갖는 내용과 형식, 구현 이념과 질료적 형태의 불일치를 의미하므로, 예술 작품의 의미 내용과 표현 사이의 불일치를 주로 표현하는 현대예술 일반과 연관된다. 리오타르는 칸트의 숭고에 주목하여 묘사할 수 없는 것, 즉 인식 능력 밖에 있는 것을 묘사하고자 하는 모순적 시도의 가능성을 숭고에서 찾는 반면, 지젝은 헤겔의 부정성과 무 개념을 소환하여, 물자체가 실은 근본적인 부정성이라는 것, 즉 표상 너머에 존재하는 것은 물자체가 아니라 순수 무이므로, 주관과 대상의 불일치를 통한 물자체의 경험이라는 칸트적 숭고는 ‘무의 구현물’에 다름아닌 것이라 진단함으로써, 헤겔의 숭고를 재해석할 통로를 만든다.
목차
요약문 1. 머리말 2. 숭고 개념의 변천 가. 숭고의 맹아 또는 기원 나. 플라톤과 롱기누스 다. 버크 라. 칸트 3. 헤겔 미학과 숭고 가. 헤겔의 미 개념과 예술 형식 나. 상징적 예술 형식의 체계와 숭고 다. 숭고 규정의 내부 4. 숭고에 관한 현대 담론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헤겔 미학숭고(미)상징상징적 예술 형식의미와 표현의 불일치Hegel’s aestheticssublimesymbolsymbolic art-typedisharmony of meaning and expression.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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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