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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김덕령 현양 실기집 연구 -정조 命撰 『金忠壯公遺事』와 버클리본 『忠勇將軍事』를 중심으로-
Commemorative Literature on Kim Deng-ryung [金德齡] : Reviewing 『金忠壯公遺事』 and 『忠勇將軍事』
의병장 김덕령 현양 실기집 연구-정조 명찬 『김충장공유사』와 버클리본 『충용장군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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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고전과 해석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30집 (2020.04)바로가기
  • 페이지
    pp.177-208
  • 저자
    이송희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75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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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Kim Deng-ryung(金德齡, 1567-1596), a citizen militia general during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6th Century, is well-known tragic hero in the tradition of folktales. Still, not much is known about the process of the official commemoration driven by the court. This thesis carefully reviews two commemorative documents devoted to general Kim: One is 『忠勇將軍事』, a manuscript written in early 17th Century, now found only in UC Berkeley East Asian Library. The other one is 『金忠壯公遺事』, published by King Jeong-jo [正祖] and later re-printed by King Heon-jong [憲宗]. The former is elaboratively transcribed, which hints that this manuscript was for circulation to read among supporters of the general. The included works of literature were written by major Noron [老論] celebrities who strongly blamed Ryu Seong-Ryong [柳成龍], the leader of Namin [南人] party, for the death of Kim. As for the latter, 『金忠壯公遺事』 was first published in 1790 with royal preface of King Jeung-jo, whose calligraphy was once changed in 1796. After in 1843, it was reprinted with a supplementary volume that includes biographic records of Kim’s brothers and memorial for his family and hometown. We can clarify some differences between 『忠勇將軍事』 and 『金忠壯公遺事』. The main narrative of 『忠勇將軍事』 is to make excuses for the tragic general with little victory in war, that he was political sacrificial victim. The writings that harshly condemned political enemies, however, were removed in 『金忠壯公遺事』. Instead, King Jeong-jo put emphasis on harmonizing the general’s royalty to king and his philial loyalty. In addition, general Kim was assigned to the scholarly lineage of Seong Hon [成渾] ex post facto to strengthen his political identity as a member of Noron. As a result, general Kim becomes more ideal type than actual figure in 18th Century.
한국어
임진왜란기 의병장 김덕령(金德齡, 1567-1596)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주로 설화전승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반면, 조정에서 간행한 기념문집인 『김충장공유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온 감이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정조 명찬 『김충장공유사』와 신자료 『충용장군사』를 각각 살피고, 이를 통해 숙종-정조 연간에 이루어진 김덕령 현양 사업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버클리 동아시아도서관에 소장된 유일본 『충용장군사』는 17세기 초중반에 회람용으로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이민서의 「김장군전」이 표제작으로, 서인-노론계에 속하는 인물들의 글이 실려있으며 류성룡을 비롯한 남인들에게 김덕령 죽음의 책임을 묻는 논조가 주를 이룬다. 정조 14년인 1790년 간행된 명찬 『김충장공유사』는 1796년 한차례 어제서의 奉敎書者가 교체되며, 이후 1843년(헌종 9년) 속편이 추간된다. 여기에는 김덕령의 생애와 정표에 관한 자료뿐 아니라 김덕령의 출신마을을 ‘忠孝里’로 표창한 내용과, 김덕령 형제에 대한 정표자료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충용장군사󰡕와 『김충장공유사󰡕를 비교해보면 몇 가지 차이점이 눈에 띈다. 『충용장군사』에서는 변변한 전공이 없는 김덕령을 변호하고 그가 당쟁의 희생자라는 시선이 강하지만, 『김충장공유사』에서는 『충용장군사』에 수록된 글 가운데 남인에 대한 비판이 과도한 글들은 생략한다. 대신 정조는 그의 가족들을 함께 정표하고 ‘충효’를 강조하는데, 이는 어머니의 상중에 의병을 일으켰다 불우한 최후를 맞은 김덕령에게 충/효의 갈등요소가 상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봉합하려 한 의도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서인계에 속하기는 했으나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던 김덕령이 성혼의 문인으로 포장됨으로써 당파적 정당성도 부여받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모두 김덕령 정표 과정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구체적인 신원의 필요성이 약화되고 대신 이념성이 강화되어가는 현상으로 보인다.

목차

[ 국문초록 ]
1. 들어가며
2. 버클리본 『忠勇將軍事』의 체재와 구성
3. 정조 명편 『김충장공유사』의 간행과 개정
4. 신원에서 현양으로
5. 나가며
참고문헌
Abstract

저자

  • 이송희 [ Lee, Song-hee |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The Society of Korean Classical Literature and Classics in Chinese]
  • 설립연도
    2006
  • 분야
    인문학>문학
  • 소개
    본 학회는 한국 고전문학/한문학의 하위 영역 전반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기반으로 한다. 이를 토대로 고전시가, 고전소설, 구비문학, 한문산문, 한시, 경학 등을 막론하는 한국 고전문학 제 영역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이들간의 학제적/주제적 연구를 지향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고전과 해석 [The Comments on the Korean Classical Texts]
  • 간기
    연3회
  • pISSN
    1975-8499
  • 수록기간
    2006~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810 DDC 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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