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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아의 아버지,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의 삶과 그 역사적 평가 분석
A Study on the life of Soda Kaichi, father of Korean orphans and the Historical Evaluation of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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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8호 (2020.04)바로가기
  • 페이지
    pp.241-266
  • 저자
    김보림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7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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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As the father of a Korean orphan, soda Kaichi who was buried in the Seoul Foreigners' Cemetery at Yanghwajin as the only Japanese took care of the orphans of persecuted Jose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is necessary to examine whether these known facts correspond with historical truth. The reason why Soda came to Korea seems to have been to find a job rather than because of the grace for Koreans who saved his life. However, his mention of gratitude for the Korean who saved his life in his life is apparent in many testimonies, which gave him a good image until he came to Korea. The influence of Christianity by Lee Sang-jae is known by many testimonies, but Soda himself does not make any special mention of Lee Sang-jae in his interview. It may be because the interview was conducted in Japan, where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was not good, and it may be possible that there was little effect of Lee Sang-jae. Meanwhile, the Motivation for the Kyungsung branch establishment of the Kamakura Nursery Center by Satake Otojiro(佐竹音次郎) came from Harris's pro-Japanese thinking, the colonial idea of reconstruction of Joseon, assimilation ideas of Japan-Korea. However, the evaluation for a person's personality like Soda, must be made from a multifaceted perspective. It is true that Soda Kaichi and his wife Ueno Taki's(上野タキ) personal love and devotion were humanistic in time. It is also important that this spirit flows into the spirit of Youngnak Borinwon.
한국어
한국 고아의 아버지로서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역에 안장된 일본인 유일의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 핍박받는 조선의 고아들을 희생과 봉사로 돌보았다는 사실과 한국의 편에서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점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알려진 사실들은 역사적 진실과 맞는 것인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소다가 한국에 오게 된 이유는 자신을 살려준 한국인에 대한 은혜로 인하 였다기 보다는 일자리를 찾아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생전에 생 명을 구해준 한국인에 대한 고마움을 언급한 것은 여러 증언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한국으로 오게 되기까지 좋은 이미지를 주었음은 분명하다. 여러 증언에 의해 월남 이상재에 의한 기독교 영향력은 알려진 사실이지 만, 정작 소다 자신은 생전의 인터뷰에서 월남 이상재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한일관계가 좋지 못했던 일본에서 시행한 인터뷰였기 때문 일 수도 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도 있고 실제로 이상재의 영향이 별로 없 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한편 사다케 오토지로(佐竹音次郎)의 가마쿠라 보육원 경성지부 설립의 계 기는 해리스의 친일적 사고와 조선재건이라는 식민 사상, 일시동인과 동화라 는 데서 왔다. 하지만 소다라는 개인의 인물 평가는 다각적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소다 가이치와 그의 부인 우에노 타키(上野タキ) 개인의 사랑과 정성은 시대 를 떠나 인류애적인 것이었다는 것은 진실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신이 이 후 영락보린원의 정신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해방 이전 소다 가이치의 삶
Ⅲ. 해방 이후 소다 가이치의 삶
Ⅳ. 소다 가이치에 대한 역사적 평가
Ⅴ.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 문헌>

키워드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 우에노 타키(上野タキ) 가마쿠라 보육원 영락보린원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역 Soda Kaichi Ueno Taki Gamakura Nursey School Youngnak Borinwon The Seoul Foreigners' Cemetery at Yanghwajin

저자

  • 김보림 [ Kim, Bo-Rim | 충북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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