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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의 전주성 점령과 삼례 행영소(行營所) 연구
The Research of Occupation of Jeonju-Castle by Donghak Peasant' Army and Samrye Haeng-yeongso(C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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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8호 (2020.04)바로가기
  • 페이지
    pp.217-239
  • 저자
    박대길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73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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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On April 27, 1894, Jeonju, the head of Honam and the home of the Korean royal family, was occupied by Donghak Farmers' Army. Reconciliation with the news fell in desperation to retake Jeonju at the earliest possible time. This impatience appeared to determine Secretly allowed the next day the Jeonju-seong fell, asking for Qing Dynasty' Army. At the same time, there was a concrete response from the government to suppress the Donghak Farmers' Army and retake Jeonju. As part of this process, the center searched for spaces and facilities to replace Jeolla Gamyeong. That was Samrye at the beginning of Jeonju. Haengyeong(行營) was a space for government offices and military offices where temporary residence and longevity of the Goryeo and Joseon periods were temporarily located. In particular, it was very useful for exhibitions. Samrye was the main point of transportation between Hanyang and Jeolla-do, and was the main station governing the transportation route centered on Jeonju, the grandfather of Jeolla-do. Therefore, it was possible to establish a sanctuary to replace Jeolla Gamyeong. Especially, since the telegraph line connecting Jeonju and Seoul passes through Samrye, it was a place where I could communicate with Seoul from time to time. As a result, Jeollagamsa(全羅監司), sunbyeonsa(巡邊使), and yeomchalsa(염 찰사(廉察使) stayed in Samrye, where they could not enter Jeonju Province. They coped with wartime conditions such as suppressing Donghak peasant army and maintaining security order in Jeolla province. The period was 11 days from 27 April to 8 May. Even after the rejuvenation of Jeonju, Samrye served as a strategic hub.
한국어
1894년 4월 27일, 호남의 수부(首府)이자 조선 왕실의 본향인 전주가 동학 농민군에게 점령당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조정은 가장 이른 시간에 전주를 탈환해야 하는 절박함에 빠졌다. 이러한 조급증은 전주성이 함락당한 바로 다음 날, 청국에 차병(借兵)을 청하는 내락(內諾)을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동학농민군 진압과 전주성 탈환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대응이 있었다. 먼저 전라 감영을 대체할 공간, 즉 행영(行營)을 물색하였다. 그곳은 바로 서울에서 내려와 전주로 들어갈 때 초입(初入)에 있는 삼례였다. 행영(行 營)은 고려와 조선 시대 지방관이나 장수(將帥)가 임시로 거처하던 관청과 군 영을 가리키는 공간이었다. 특히 전시(戰時)에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삼례는 한양과 전라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였고, 전라도의 수부인 전주를 중심으로 한 교통로를 관장하는 주요 역이었다. 따라서 전라 감영을 대체할 행영소를 설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전주와 서울을 연결하 는 전신선(電信線)이 삼례를 통과하는 관계로, 수시로 서울과 연락을 주고받 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전주성에 들어갈 수 없었던 전라 감사와 순변사, 그리고 염찰사 등이 삼례에 머물렀다. 이들은 삼례 행영소에서 동학농민군 진압은 물론 전 라도 지역의 치안 질서 유지 등 전시 상황에 대처하였다. 그 기간은 4월 27 일부터 5월 8일까지 11일이었다. 전주성 탈환 이후에도 삼례는 전략적인 요 충지로 기능하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동학농민군의 전주성 점령과 전라 감영
Ⅲ. 삼례 행영소 설치와 전신국 운영
Ⅳ.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 문헌>

키워드

삼례 전주성 전라 감사 행영소 전봉준 김문현 김학진 홍계훈 여산 위봉산성 전신국 Samrye Jeollagamsa Samrye Haeng-yeongso(Camp) Jeonju-Castle Jeolla Gamyeong Jeon Bongjun Kim Moonhyun Kim Hakjin Hong Gye-hoon Yeosan Wibongsanseong Fortress

저자

  • 박대길 [ Park, Dae-Gil | 부안군청 전문위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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