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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송암 기정익의 학맥과 호남의 노론 사족
The Ki Jung-ik’s School vein and Noron Sajok of Honam in the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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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8호 (2020.04)바로가기
  • 페이지
    pp.147-172
  • 저자
    이선아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7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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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Ki Jung-ik from Jangsung had a great effect on an academic line and political position of local noble family in Honam. He was descended from Ki Jun, a member of Kimyo-Sarim, so he succeeded to Sarim’s practical study. He became Song Si-Yeol’s pupil in 1668. He did not study under his teacher directly, but discussed an intricate problem with his teacher by sending letter. Especially, his discussion with Park Sang-hyun, Neo-Confucianist in Gwangju, served as important momentum to trigger an academic dispute of Yulgok school. He also had a companionship with Yun Jeung. He introduced Park to Yun, and they had it with Park Se-chae, Kim Su-hang, Shin Ik-sang, etc. But they did not last for long. For Seoin was divided into Noron, who stood by Song, and Soron, by Yun. He tried to arbitrate in their dispute, but failed to stop their split. In the process, He chose his teacher, Noron. His choice made local noble family in Honam to head for Noron. Hwang of Pyeonghae in Heungduk, Park of Sunchun in Gwangju, and Byeon of Hwangju in Jangsung who had a companionship with him grew up into representative Noron Sajok in Honam.
한국어
조선의 17세기는 두 차례의 호란(胡亂)으로 민생이 피폐하고 국기(國紀)가 혼란해진 시대였다. 당시 조선의 사림은 청나라와 굴욕적인 군신관계(君臣關 係)를 맺은 현실을 천하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으로 인식하였고, 존화양이(尊 華攘夷)와 숭명반청(崇明反淸)의 이념을 품고 복수설치(復讐雪恥)의 시대를 기 약하였다. 무너진 기강(紀綱)과 예의(禮儀)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에서 예송(禮訟)이 일어나고,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서인 내부에서도 회니시비로 인한 노론과 소론의 갈등이 깊어졌고, 이러한 붕당의 분화 속에서 지방의 사림도 그 입장과 노선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17세기 붕당정치가 심화되는 시대에 호남 장성에 세거한 기정익(奇挻翼)은 호남의 사림의 학문적, 정치적 노선과 입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기건 (奇虔), 기준(奇遵), 기대승(奇大升), 기효간(奇孝諫)으로 이어진 호남 사림의 명맥(命脈)을 계승한 학자로, 송시열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윤증, 김수항, 박세 채 등과 교유하였다. 특히 기정익이 박상현과 나눈 성리학설에 대한 논변은 ‘율곡학파의 학술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회니시비가 시작되는 즈 음에 기정익은 송시열과 윤증 사이에서 중재를 위해 노력하였다. 기정익은 송시열과 윤증의 갈등이 ‘강도의 일’과 ‘윤휴와의 절교’를 발단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정리하였다. 당시 윤휴에 대한 입장은 노론과 소론이 갈라서는 요 인으로 작용하였는데 기정익은 송시열과 윤증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이었지만 사제관계로 맺어진 송시열을 존숭하면서 노론의 길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기정익의 선택은 호남의 노론 학맥이 형성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정익이 교유한 흥덕의 평해황씨와 광주의 순천박씨, 장성의 황주변 씨는 호남의 대표적인 노론 사족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호남의 노론 사족은 노론과 남인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는 시기에 경기와 호서 노론과 협력하며 노론의 세력 확장에 일조하였다.

목차

I. 머리말
II. 장성 행주기씨의 내력과 기정익의 가계
III. 기정익의 학문 활동과 노론 학맥
IV. 기정익의 교유관계와 호남의 노론 사족
V.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 문헌>

키워드

기정익 행주기씨 송시열 윤증 호남 노론 장성 박상현 평해황씨 황주변씨 Ki Jung-ik Song Si-Yeol Park Sang-hyun Yun Jeung Noron Soron Honam Jangseong.

저자

  • 이선아 [ LEE, Sun-Ah | 전북대학교 이재연구소 연구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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