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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학생 담론의 지형 변화와 1920년대 중국 유학 담론 분석
Topography change of modern international student discourse and discourse on studying in China during the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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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중인문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중인문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66집 (2020.03)바로가기
  • 페이지
    pp.167-187
  • 저자
    김경남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7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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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appearance of foreign students in Korea is after the inspection team dispatched in 1881. Then, in 1895, a large number of Japanese expatriates from Japan, such as dispatching(government expense) students to Japan, were surged in the 1900s. In the process, various discourses about dispatching international students and the roles of international students were formed. The major study destinations were Japan or the West until the forced merger in 1910. However, by the 1920s, the necessity of studying in China was raised, and many articles on studying abroad including the Dong-A Ilbo were published. However, the notion of studying in China at this time also shows that there is little prejudice against China, which is expressed as ‘CHEONYSIM(賤夷心: a lowly barbarian)’. In the 1920s, many studies on studying in China have not been conducted so far, so it is difficult to grasp the whole. However, based on a large number of study guide materials, it was confirmed that many famous universities in China were church schools at the time, and operated a Western-style academic system centered on English. This means that the motivation for studying abroad is often recognized as a platform for studying in the West rather than exchanges with Chinese studies.
한국어
우리나라에서 유학생이 출현한 것은 1881년 조사시찰단 파견 이후이다. 그후 1895년 재일 관비 유학생(官費留學生) 파견을 비롯하여, 1900년대 다수의 재일 사비 유학생이 급증했다. 그 과정에서 유학생 파견이나 유학생의 역할 등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었는데, 1910년 강제 병합 직후까지 주요 유학 대상지는 일본 또는 서구였다. 그러나 1920년대에 이르러 중국 유학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동아일보』를 비롯한 다수의 유학 안내 기사가 게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의 중국 유학에 대한 관념에서도 ‘천이심’으로 표현되는 중국에 대한 편견 이 적지 않게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20년대 중국 유학의 실제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 못한 상황이어서 그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상당수의 유학 안내 자료를 근거로 할 때, 그 당시 중국의 유명한 대학 가운데 상당수가 교회학교였으며, 영어를 중심으로 한 서구식 학제를 운영하였음 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유학의 동기가 중국 학문과의 교류 차원보다는 서구 유학을 위한 발판 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목차

국문요약
1. 서론
2. 근대 유학생 담론 형성과 변화
3. 1920년대 중국 유학 담론과 실제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근대 유학생 중국 유학 유학 안내 편견 modern foreign student studying in China guide material prejudice

저자

  • 김경남 [ Kim, Kyoungnam |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HK연구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설립연도
    1996
  •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중인문학연구 [Studies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0383
  • 수록기간
    1996~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001 DDC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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