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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논문 : 기획 주제-일제 강점기 한ㆍ중 지역 독립운동의 인문학적 가치와 전망

일제강점기 양양농민조합의 혁명화와 그 배경
The Revolutionization of Yangyang Peasant Un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its Back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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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중인문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중인문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66집 (2020.03)바로가기
  • 페이지
    pp.105-133
  • 저자
    이세진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7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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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Yangyang Farmers' Union was established in the late 1920s and developed a revolutionary movement.The revolutionary nature of the Yangyang Farmers' Union is closely related to the regional specificity of the east coast of Gangwon Province rather than the specificity of the Yangyang area. The revolutionaryization of the Yangyang Farmers' Union is closely related to external factors, which is the reason why the Eastern-sea region of Gangwon Province is adjacent to Hamgyeong Province and the development of transportation such as shipping and railway. Hamgyeong Province was a border area, and there were many human exchanges with the old age, Manchuria, and Gando, which were the liberation districts of thought at that time. In addition, Heungnam, Hamheung, and Wonsan, which were adjacent to Gangwon Province, were concentrated in heavy chemical industry investment in Japan and shipping and railway were also developed considerably. Many poor farmers in Yangyang moved to Hamgyeongdo as industrial workers or unloading workers, and they naturally came to see socialist ideas. In addition, the Yangyang Farmers' Union Movement played a major role in the local elite. Kim Byung-hwan, Choi Wook, and Choi Yong-dal were early in socialist thought, and they played a key role in the creation of the Yangyang Farmers' Union. The revolutionaryization of the Yangyang Farmers' Union was linked to these regional specificities and human factors.
한국어
양양농민조합은 1920년 후반에 결성되어 혁명적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양양농민조합의혁명적 성격은 강원도 동해안의 지역적 특수성과 밀접하다. 강원도 동해지역은 함경도와 인접해 있다는 점과 해운, 철도 등 교통이 발달해 있었다. 당시 사상의 해방구였던 노령, 만주, 간도 등과 많은 인적 교류 많았던 함경도와 인접해 있었다. 또한 강원도와 인접한 도시였던 흥남, 함흥, 원산은 일제의 중화학공업 투자가 집중되었고, 해운과 철도도 상당히 발달한 곳이었다. 양양의 많은 빈농들은 함경도에 공업 노동자나, 하역 노무자로 이주했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이처럼 양양농민조합의 혁명화는 외부적 계기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또한 양양농민조합운동에는 지역 엘리트의 역할이 컸다. 지역 엘리트들은 양양농민조합의 결성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양양농민조합의 혁명화는 이런 지역적 특수성과 인적 요소가 결합되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경제위기에 대응한 일제의 농업정책과 동해안 사회주의
3. 1930년대 초반 양양농민조합의 결성
4. 양양농민조합의 혁명화 배경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농민조합운동 혁명화 해방구 양양지역 함경도 외부적 계기 강원도 동해안 Yangyang Farmers' Union external factors revolutionization Hamgyeong Province Eastern-sea region of Gangwon Province

저자

  • 이세진 [ Lee, Sejin |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네르바 교양대학 강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설립연도
    1996
  •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중인문학연구 [Studies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0383
  • 수록기간
    1996~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001 DDC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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