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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辰戰爭과 木戶孝允의 해군력 강화노력
The Boshin War and Kido Takayoshi's Efforts to Strengthen the Naval Forces
무진전쟁과 목호효윤의 해군력 강화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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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일본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일본학보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122권 (2020.02)바로가기
  • 페이지
    pp.221-243
  • 저자
    沈箕載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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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examines Kido's political efforts to strengthen the naval forces of the new Meiji government. First, Kido, during the Boshin War, realized the necessity of establishing naval officers' training by foreign military instructors. He carried out the plan with cooperation from Omura, a strong man in the Military Affairs Department. Second, with the help of Omura and others, Kido, who, among the new government figures, first claimed the need of founding the navy and retaining strong naval forces. He established the first modern naval fleet in July of the 3rd year of Meiji and founded the Japanese navy in June of the 6th year of Meiji. Third, Kido, who regarded the establishment of the navy-army military system as his life-time task, founded with Omura, an early establishment of the navy-army military system and created military troops from September of the first year of Meiji, and contributed to finalizing the navy-army military system in October of the third year of Meiji. Fourth, from the September of the first year of Meiji, Kido, foreseeing that a huge amount of money was required to build military ships, proposed the Navy and Army Budget Assignment Theory based on the issuance of local government bonds, This enabled the navy-army to secure the defense budget in September of the following year.
한국어
이 논문은 明治 新政府의 해군력 강화작업과 관련해, 신정부 요인 기도 다카요 시(木戶孝允)의 정치적 노력을 고찰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가 있 었다. 첫째 해군력 강화를 군사・행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해군 직제가 관제 개혁의 영향으로 해육군무과→군방사무국→군무관→병부성을 거쳐, 明治 5(1872) 년 2월 해군성이라는 독립조직으로 탄생되었다. 둘째 기도는 보신전쟁 중 해군사 관 양성・외국인 교관 초빙의 필요성을 일찍 깨닫고, 정치적 동반자인 군무관 실 력자 오무라와의 공조 하에 해군조련소 설립 등을 통해 실현시켜 나갔다. 셋째 신정부 수뇌 중에서 가장 먼저 해군력 보유・해군 창설의 필요성을 제창한 기도는 오무라 등의 협조에 힘입어, 明治 3(1870)년 7월과 明治 6(1873)년 1월 신정부 최 초의 근대 해군함대와 일본해군을 각각 탄생시켰다. 넷째 해육군 “병제의 기초” 정립을 평생의 과제로 삼고 있었던 기도는 오무라와 함께, 明治 원(1868)년 9월경 부터 해육군의 ‘병제’확정과 ‘병력’창출을 제창해, 明治 3년 10월 해육군의 ‘병제’ 확정에 기여했다. 다섯째 군함 건조 등에 막대한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 기도는, 明治 원년 9월 중순경부터 지방‘국채’ 발행을 통한 해육군 예산배정론을 제창해, 이듬해 9월 해육군의 국방예산확보에도 성공했다. 이처럼 기도는 오무라 등의 정책적 협조에 힘입어, 해군 우선의 영국식 ‘병제 기초’ 확립・해군력 강화의 재원 확보, 해군사관양성학교 설치・외국인 교관 초빙, 제번함선 등의 헌납에 기초한 근대일본 해군(함대) 창설과 같은 주목할 만한 정 치적 성과를 이끌어내는데 공헌했다.

목차

<요지>
1. 머리말
2. 明治 초년의 해군직제 개편
3. 해군사관의 양성과 기도
4. 기도의 해군창설 전망과 후속작업
5. 병제개혁과 기도
6. 해군재원 확보와 기도
7. 해군함대 창설과 기도
8. 맺음말
참고문헌(Reference)

키워드

기도 다카요시 해군사관 양성 병제 개혁 재원 확보 해군(함대) 창설 Kido Takayoshi Naval officer training Military system reform Securing financial resources Establishment of the navy(fleet)

저자

  • 沈箕載 [ 심기재 | 단국대학교 일본학전공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일본학회 [Korea Association Of Japanology]
  • 설립연도
    1973
  • 분야
    인문학>일본어와문학
  • 소개
    본 한국일본학회는 일본관련 학회로는 1973년에 한국 최초로 성립되어 2015년 3월 현재 가입회원수 기준 1000여명에 달하는 방대한 학회로 발전하였다. 본 학회는 일본어학 및 일본학은 물론,일본의교육,사상,역사,민속 등 일본학 전반에 걸친 연구와 한일간의 일본학 전반에 걸친 비교 연구를 대상으로 하는 학회로서 회원들의 연구기회 제공과 정보의 교류를 주된 목표로 하고 있다. 분회 발표를 포함하여 매년 20회 가까운 학술발표회와 국제학술대회를 개최 함으로서 발표 기회의 제공과 함께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의 장으로도 활용하며 건전한 학회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간행물

  • 간행물명
    일본학보 [The Korean Journal of Japanology]
  • 간기
    계간
  • pISSN
    1225-1453
  • 수록기간
    1973~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3 DDC 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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