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the Catholic Persecution in 1801, the seed of the parish planted from a forming Catholic Community by the oppressors hidden in the mountain sides. The treaty between Korea and France was signed in 1886 and in effect from 1887. With the result of that, the oppression against the Catholic Church was alleviated. Then, Blanc, Jean Marie Gustave(白圭三, 1844~1890), the Pastor in Vicariate Apostolic of Joseon could establish Poongsoowon Cathedral, the first parish in Ghangwon province, Korea in 1888. On April 26, 1896, Tjyeng kyuha (鄭圭夏, Augustino, 1863 ~ 1943) became the third priest in the ordination was held for the first time in Korea. He was sent to the parish, Poongsoowon and he built the first Western style Cathedral there. It was the first one by the first indigenous pastor and seventh Romanesque style in the nation as well. He did not offer benefits only to believers but also to everyone through school education, medical care and poor relief in the community.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believers also testified that he supported both unofficail and official independence forces against Japanese invasion. He founded several piety group under the parish, including the St Anna’s has kept the tradition since then. He conducted the Eucharist Exaltation Congress. They celebrate ninety-sixth tradition of the congress on the Solemnity of the Most Holy and Blood of Christ this year as usual with the exception of three years during the Korean War. After he trained six priests, the parish has turned out more than thirty priests and large number of religious. As a result, his work has been a successful model of parish pasto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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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4월 26일 서울 약현 성당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천주교 사제 서품식(敍品式)이 거행되었다. 이날 말레시아의 페낭 신학교를 거쳐 용산 신학교에서 과정을 마친 정규하(鄭圭夏, 아우구스티노, 1863~1943)는 강도영(姜道永 마르코, 1863~1929)·강성삼(姜聖參 라우렌시오, 1866~1903)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사제가 되었다. 정규하는 한국인 신부로서는 처음으로 강원도 최초의 본당인 풍수원에 파견되었다. 이 본당 설정은 1801년 신유박해 이래 산골에 숨어든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었던 일에서 시작되었다. 1886년에 체결된 한불조약이 1887년부터 효력이 발휘되어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완화되자 1888년 조선 대목구장 블랑(Blanc, Jean Marie Gustave 白圭三, 1844~1890) 주교는 강원도 최초의 본당을 그곳에 창설할 수 있었다. 정규하 신부는 신자들과 직접 벽돌을 구워가며 강원도에서는 최초로 서양식 성당을 지었다. 한국인 신부로서는 첫 번째 성당건축이었고, 국내에서 일곱 번째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완공되었다. 그는 학교 교육, 환자와 빈민 구제 활동을 통해 신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모든 이들에게 혜택을 주었다. 광복 이후 신자들은 그가 일본의 침략에 대한 저항으로 일어난 의병과 독립군을 지원하였다고 증언하였다. 그는 신자들을 위해 본당 산하에 성부안나회를 비롯한 신심 단체들을 설립하였고, 성소 계발에 관심을 기울여 생전에 6명이 사제 서품에 이르렀고, 성체현양대회를 실시하였다. 반드시 성체 성혈 대축일을 기해 실시하는 풍수원 성체현양대회는 6·25 전쟁 기간 3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거행되어 2019년에는 96차를 맞는 전통이 되었다. 성녀 안나를 주보로 하는 성부안나회(안나회)는 현재까지 유지되는 부인회의 전통이 되었고, 본당 출신 신부는 30명을 훌쩍 넘어섰으며, 그보다 더 많은 수도자를 배출하였다. 정규하 신부가 첫 번째 한국인 본당 신부로서 남긴 업적은 본당 사목의 성공적인 한 전형이 되었다. 그가 사목하는 동안 풍수원 본당을 모태로 경기도 일부와 강원도 지역으로 여러 본당이 분가하여 뻗어나갔고, 춘천교구와 원주교구를 이루는 출발점이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사제 서품에 이르는 여정 Ⅲ. 풍수원 정착 과정 Ⅳ. 풍수원 성당에서의 사목활동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설립연도
2003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