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dwig Wittgenstein suggests that a main source of our failure to understand is that we don’t command a clear view of the use of our words, and that our grammar is lacking in this sort of perspicuity. According to Wittgenstein, a perspicuous representation produces just that understanding which consists in seeing connections while finding and inventing intermediate cases. Hence the concept of a perspicuous representation is significance for his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A perspicuous representation corresponds to philosophical description which Wittgenstein says. This description is contrasted with explanation, i.e. scientific explanation. And a perspicuous representation is contrasted with exactness. It does not consist in looking into the thing to find something that lies beneath the surface, but seeing connections while finding and inventing intermediate cases. For Wittgenstein, the word has it’s meaning from the rest of our proceedings. Therefore, a perspicuous representation consists in seeing connections with the whole consisting of language and the actions into which it is woven. It is to see a complicated network of similarities overlapping and criss-crossing. But for this to occur, we have to bring words back from their metaphysical to their everyday use. So it does not consist in surveying with a bird’s-eye view. It consists in focusing on the details of what goes on, looking at them from close to. It is to see the data in their relation to one another and to embrace them in a general picture. By doing so, we see aspects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we could not have realized because we were hidden in our eyes because of its simplicity and familiarity, always in front of our eyes. A perspicuous representation consists in seeing something that is already in plain view. Thereby, the philosophical problems completely disappear. A perspicuous representation, or complete clarity that Wittgenstein tries to get is not the one that fills out table about the way of using word, but the one that gives philosophy peace, consequently.
한국어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의 문법에는 일목요연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우리의 몰이해의 주요 원천은 우리가 우리의 낱말들의 사용을 일목요연하게 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일목요연한 묘사가 이해를 성립시키는데, 이해는 중간 고리들을 발견하거나 발명하여 연관들을 보는 데 있다. 따라서 일목요연한 묘사란 개념은 그의 철학적 탐구에서 근본적인 의미가 있다. 일목요연한 묘사는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철학적 기술에 상응하는 것이다. 기술은 설명, 과학적 설명과 대비해서 말해진 것이다. 일목요연한 묘사는 또한 정확성, 엄밀성과 대비해서 말해진 것이다. 그것은 표면 아래에 놓여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기 위해 현상들을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고리들을 발견하거나 발명하여 연관을 보는 데 있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낱말은 우리의 나머지 행위들로 인해 그 뜻을 얻는다. 따라서 일목요연한 묘사는 언어와 그 언어가 뒤얽혀 있는 활동들의 전체와의 연관을 본다는 데 있다. 그것은 서로 겹치고 교차하는 유사성들의 복잡한 그물을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언어놀이를 배운 방식, 훈련받은 방식을 상기해야 하고, 낱말들을 형이상학적 사용으로부터 일상적인 사용으로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새의 눈으로 개관하는 것이 아니라 세목들을 주시하는 것이고,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가까이에서 고찰하는 일이다. 그것은 자료들을 그것들 서로의 관계에서 보고 하나의 일반적 그림 속에 총괄하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 단순성과 일상성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숨겨져 있었던, 언제나 우리 눈앞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깨달을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사물들의 측면들을 보게 된다. 그럼으로써 철학적 문제들이 완전히 사라진다.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이 얻고자 애쓰는 일목요연한 묘사, 완전한 명료성은 우리의 언어 사용 방식에 대한 완전한 일람표의 작성이 아니라 철학을 조용히 쉬게 해주는 것이다.
목차
요약문 1. 머리말 2. 일목요연한 묘사 3. 일목요연한 묘사와 기술 4. 연관들의 봄 5. 일목요연한 묘사와 세계관 참고문헌 Abstract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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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