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al currency system is a system in which large and small currencies dominate large commodity trading markets and commodity trading markets respectively, and when currencies of the two markets are exchanged for commodity trading, the ratio is freely formed to control the supply and demand of currencies. Therefore, Gresham's law of "bad money drives out good" is not carried out. As coins in the micro-payment market were concentrated in a specific period of time and region for high-value payments, coins were highly valued in the small-payment market and were undervalued in the high-value market. It created a price gap between Seoul and the small-scale region, where large payments are made, and expanded the profits of transactions using the gap between the two. The dual monetary system began to recover from the inflow of silver after the opening of the port. There was no disruption to distribution, such as ‘Dangbaek coin(當百錢)’ and ‘Chinese coin(淸錢)’ as the exchange rate of the market remained the same when the exchange was made between silver and coins. Demand for coins was increasing as local grain moved to the opening port. In addition, the government responded to the demand for the coins by lowering the material value of the coins and increasing the amount of castings, as they continued to be undervalued compared to the Shanghai market in China. The match between ‘Dango coin(當五錢)’ and ‘Pyongyang coin(平壤錢)’ temporarily caused confusion in the coin circulation, but quickly got involved in the post-coup, restoring stability of the curr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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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통화체제는 고액통화와 소액통화가 대규모 상품거래시장과 일상적 상품거래 시장을 각기 분점하고, 상품거래를 위해 두 시장의 화폐가 교환될 때 그 비율이 자유롭게 형성되어 통화의 수급을 조절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관철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항 이전 엽전 중심의 통화체계는 이중통화체제의 조정 기능이 경직화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소액결제시장의 엽전이 고액결제를 위해 특정 기간,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엽전은 소액결제시장에서 고평가되고, 고액결제 시장에서 저평가되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는 고액결제가 이루어지는 서울과 소액결제가 이루어지는 지방의 물가격차를 발생시켰고, 양자 사이의 격차를 이용한 거래의 이익을 확대시켰다. 이중통화체제는 개항 이후 은화의 유입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은화와 동전 사이의 교환에서 시장의 환율이 그대로 적용되었기 때문에 당백전과 청전과 같은 유통 상의 폐단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부도 은을 매매할 때는 시장의 교환비율을 적용했다. 엽전 중심 통화구성이 변화되면서 은·동의 이중통화체제의 균형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또한 지방의 곡물이 개항장으로 이동하면서 엽전의 수요가 증대되고 있었다. 또한 중국 상하이 시장에 비해 엽전이 저평가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엽전의 소재가치를 낮추고, 주조량을 늘려서 엽전 수요에 대응했다. 당오전과 평양전은 일시적으로 엽전유통에 교란을 발생시켰지만, 빠르게 엽전에 포섭되어 통화의 안정성이 회복되었다. 거류지 환율의 극심한 변동 현상을 조선 전체의 통화문제로 확장하여 해석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중통화체제가 문란하여 금본위제를 성립하는 것이 근대적 과제라는 통념 역시 재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목차
Ⅰ. 머리 글 Ⅱ. 18세기 엽전의 저평가 현상 Ⅲ. 엽전 중심 통화 운영과 고액화폐 발행 논의 Ⅳ. 은·동 이중통화체제의 기능회복 Ⅴ. 마무리 글 <국문초록> <참고 문헌>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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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