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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기 재조일본인의 장학단체의 설립과 운영 - 아사노 다사부로(淺野太三郞)의 천야육영회(淺野育英會)를 중심으로
A Study on Establishment and Operation of Scholarship Foundation established by Japanese Settlers in Korea under Japanese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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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일본교육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국일본교육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24권 제2호 (2019.10)바로가기
  • 페이지
    pp.75-93
  • 저자
    김자중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64585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study ained to analyze establishment and operation of scholarship foundations established by Japanese settlers in Korea under Japanese rule, and to find out the implications through the case of Asano Tasaburo’s Cheon-Ya Scholarship Foundation. The results were as follows. Cheon-Ya Scholarship Foundation was established by a combination of Asano’s sympathy and support of the Governor-General of Korea. In other words, Asano and the Governor-General of Korea were in a close relationship, and in such a situation, the Governor-General of Korea supported the establishment of Cheon-Ya Scholarship Foundation. This shows that Cheon-Ya Scholarship Foundation played a positive role in providing educational opportunities to the lower classes in Korea under Japanese rule, but also played a negative role in responding to ‘Reconciliation between Korea and Japan’.
한국어
본 연구는 일제 식민지기 재조일본인의 장학단체의 설립과 운영 그리고 그 성격을 아사노 다사부로의 천야육영회를 사례로 하여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 다. 천야육영회는 아사노의 동정이라는 개인적 배경과 조선총독부의 지원이라는 사회적 배 경 간의 결합에 의해 설립됐다. 그리고 양자의 연결고리는 “아래로부터의 침략”, “풀뿌리 침 략”이라는 재조일본인의 존재양태와 ‘내선융화’라는 식민지 지배정책이었다. 즉 기본적으로 아사노는 조선총독부와 유착관계에 있었으며 이와 같은 상황에서 조선총독부는 천야육영회 가 ‘내선융화’라는 문맥 하에서 운영되도록 했고 이 과정에서 아사노도 특별히 이를 부정하 지 않았다. 오히려 이때 아사노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별 없이 선발한다는 방침을 표방함 으로써 ‘내선융화’에 호응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이를 보면 일제 식민지기에 천야육 영회는 경제적 하위계층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으나 이와 함께 ‘내선 융화’에 부응하는 부정적인 역할도 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천야육영회는 ‘내선융화’의 미담 으로서 식민지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이 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천야육영회 의 성격은 이후 기타 재조일본인의 장학단체를 고찰하는 데에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일본어
本研究は日本植民地期の朝鮮における在朝日本人の奨学団体の設立と運営そしてその性格につい て淺野太三郞の淺野育英會を例として究明することを目的とした。その結果は下記の通りである。 淺野育英會は浅野の同情という個人的背景と朝鮮総督府の支援という社会的背景の結合による設立 された。そして両者の結びつきは'下からの侵略'、'草の根侵略'という在朝日本人の存在様態と'内鮮 融和'という植民地支配政策だった。すなわち基本的に浅野は朝鮮総督府と癒着関係にあり、このよ うな状況で、朝鮮総督府は淺野育英会の設立が'内鮮融和'という文脈のもとに運營されるようにし、 この過程で浅野も特にこれを否定しなかった。これを見ると、日本植民地期に淺野育英会は経済的 下位階層に教育の機会を提供する肯定的な役割を果たしたが、これと共に'内線融和'に応える否定的 な役割も果たと言える。

목차

<요약>
Ⅰ. 들어가며
Ⅱ. 아사노의 이력과 인물
1. 입지전적 실업가이자 독지가
2. 천황숭배자
Ⅲ. 천야육영회의 설립 배경
1. 경제적 문제로 재학이 곤란했던 학생들에 대한 동정
2. 조선총독부 관리들의 지원
Ⅳ. 천야육영회의 운영 현황
1. 중등학교 교장의 추천과 조선총독부 관리들의 심의
2. 조선인 다수 선발
Ⅴ. 나가며
참고문헌
일본초록
Abstract

키워드

재조일본인 장학단체 아사노 다사부로 천야육영회 내선융화 Japanese Settlers in Korea scholarship foundation Asano Tasaburo Cheonya Scholarship Foundation Reconciliation between Korea and Japan 在朝日本人 奨学団体 淺野育英會 淺野太三郞 内鮮融和

저자

  • 김자중 [ Kim Jajoong | 홍익대학교 박사후 연구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일본교육학회 [The Korea Society of Japanology, Japan Education Division Seoul, Korea]
  • 설립연도
    1985
  • 분야
    인문학>일본어와문학
  • 소개
    한국일본교육학회는 1985년 2월 27일, 한국과 일본의 교육학 연구의 정립과 발전을 목적으로 그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딛은 이래 지금까지 양국 교육학의 이해에 많이 기여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학 전공학자는 수천 명에 이르고 있으며, 전공의 다양성은 물론, '지역연구'의 영역 또한 매우 광범위하게 펼쳐 있다. 우리나라 교육학의 외연을 살찌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되도록 수많은 지역과 나라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교육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지역교육연구의 현실은 그 지역의 다양성과 교육학적 이해에 있어서 매우 척박한 실정이다. 이런 부진한 지역연구의 현실 속에서 본 학회는 아시아 지역,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교육' 연구에 초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교육학계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국일본교육학연구 [韓國日本敎育學硏究]
  • 간기
    반년간
  • pISSN
    1229-8581
  • 수록기간
    1996~2020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370 DDC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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