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代 英宗 시기 정국과 南坡之變의 발생 배경
The Politics of Emperor Yingzong(英宗) period in Mid-Yuan Empire and Background of Coup d‘etat in Nanpo(南坡) 원대 영종 시기 정국과 남파지변의 발생 배경
In this paper, I attempted to analyze in detail the political background of the Coup d’etat in Nanpo(南坡) in 1323. In the previous research, scholars set up a confrontational structure between ‘sinicization’ and ‘anti-sinicization’, so they simplified politics of Mid-Yuan empire. Now, it is necessary to review the situation through the change of political power structure. Although Yingzong(英宗) was a crown prince, the power was always insecure because he did not succeed ‘tanistry succession’ inherent in the Mongol Empire. In addition, Yingzong’s military power base was weak. Even the political influence of the Empress Dowager and Temüder limited the power of Yingzong. So, Yingzong succeeded in alienating Empress Dowager and Temüder from the court politics by appointing Baiju. After death of Empress Dowager and Temüder, Yingzong appointed Baiju to ‘sole chancellor(獨相)’ and gave him exclusive authority. As a result, the balance of power structure collapsed. The Temüder faction who were threatened by a radical change in the power structure, rebelled against Yingzong and Baiju. In other words, another extreme reaction occurred because of extreme changes in political power structure. Coup d’etat in Nanpo was an incident in which the Emperor was assassinated due to a change in political structure, it has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political history of mid-to-late Mongol-Yuan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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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에서는 원대 중기에 일어났던 남파지변이라는 황제 시해 사건이 발생하게 된 정치적 배경을 상세하게 규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기존 연구에서 漢化 對 몽골의 이념적 구도의 틀 속에서 이루어진 설명으로 인해 단순화되었던 당시 정국을 재검토하는 차원에서 권력 구도의 변화라는 관점을 통해 분석을 시도했다. 영종은 제위계승의 과정에서 황태자로 지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몽골제국 고유의 ‘적임자 계승’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권력 기반 측면에서 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영종 스스로의 권력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군사력 등의 지지 기반이 부재했고, 심지어 태황태후와 권신 테무데르의 정치적 영향력에 가려 황권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영종은 이에 황태자 시절부터 지켜보았던 바이주를 측근으로 등용하여 황권을 강화하면서 태황태후와 테무데르를 정계에서 소외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면서 영종은 비로소 본격적인 자신의 정치를 시행할 수 있었다. 영종은 바이주를 중서성을 관할하는 중서우승상에 임명하고, 중서좌승상을 두지 않으면서 바이주에게 독점적인 권한을 부여했다. 비록 바이주가 영종이 수여하려 했던 여러 직함들을 받는 것은 사양했지만, 바이주의 위상은 너무나 비대해져 있었다. 영종은 바이주와 함께 황권 강화 추진을 위해 중국식 법제의 수립 등 기존 중화제국에서 추진되었던 정책을 사용했다. 여기에 더불어 테무데르가 남겨놓은 정치 세력을 숙청하면서 영종이 테무데르 등에 의해 옹립되었던 과거를 철저히 씻어내고자 했다. 하지만 영종은 자신의 처남인 테시가 테무데르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숙청의 대상에서 제외한 채 어사대의 임무를 맡겼는데 영종은 줄곧 바이주를 지지하면서 어사대의 중서성 견제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권력 구도가 갑자기 바이주 쪽으로 기울어지고 숙청의 바람이 몰아치자 위협을 느끼게 된 테무데르 세력은 테시를 중심으로 ‘반역’을 일으켰다. 이 반역에는 황제를 호위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케식군과 시위친군의 일부가 직접 가담했고, 영종과 바이주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암살되고 말았다. 이는 이념적 갈등은 물론이고, 정치적 권력 구도의 극단적인 변화로 인해서 또 다른 극단적인 반작용이 터져 나온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남파지변은 권력 구도의 변화로 인해 황제가 시해되었던 사건이었고, 이는 원대 중기와 후기 정치사에 짙은 그림자를 남기게 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영종의 ‘親政’과 바이주-테무데르의 대립 政局 Ⅲ. 새로운 정국의 시작 – 테시의 등장과 그의 위상 강화 Ⅳ. 남파지변의 발생 배경 - 獨相의 등장과 갈등의 첨예화 Ⅴ.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문헌>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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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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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