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rtrait of King Taejo was moved to wibongsanseong(威鳳山城) to be preserved at the time of DonghagNongminHyeogmyeong. However, there were different stories about the relocation process. Gyeong-gijeon(慶基殿) chambong(參奉) Jang-gyowon(張敎遠) and jogyeongmolyeong(肇慶廟令) Parkdonglae(朴東來) were in charge of protecting the portrait and ancestral tablets in geong-gijeon at the crisis of jeonjuseong(全州城) falling. jeonjupangwan(全州判官) Min-yeongseung(閔泳承), who had been in charge of Jeolla provincial office as a gadosa(假都事), was the final director due to the absence of the governor(jeonlagamsa·全羅監司). Therefore, It is no wonder that they should protect the portrait and tablets, and they actually did. This can be found in several records including the report of jeonlagamsa. The portrait was enshrined in the main hall of wibongsa(威鳳寺) which was located in wibongsanseong, rather than being placed immediately in the palace. That was because the palace had been remained vacant for a long time after its construction. The portrait and tablets were then moved to the palace through jinjangcheong(鎭將廳) in wibongsanseong, and they were finally enshrined in the original place after Donghak peasant army had withdrawn from jeonjuseong
한국어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주성이 함락되면서 경기전과 조경묘에 봉안되어 있는 태조 어진과 전주이씨 시조 이한의 위패가 위봉산성으로 이안되어 지켜졌다. 이 과정에 대해서 크게 2가지설이 전해져 왔다. 하나는 전주 판관 민영승이 경기전 참봉 장교원이 수습하여 이안하려던 어진을 빼앗아 위봉산성에 봉안한 후 그 공을 가로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영승의 처남 이연일이 주도하여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어진의 이안은 조정의 승인을 받은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경기전에 있던 태조 어진을 지켜낸 사실에서 확인된다. 어진은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민간인이 임의로 옮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따라서 관원이 주도하여 이안하고 수직하는 게 사실에 부합된다. 이를 전제로 하여, 동학농민혁명 당시 어진과 위패는 전라 감영의 관원이 주도하여 지켜낸 것으로 정리되는데, 누가 어떤 방법으로 수행했느냐에 대해서 주목하였다. 본고에서는 그 당시 전라 감사의 부재로 인해 전주 판관 민영승이 가도사 되어 책임자로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이에 따라 태조 어진의 이안과 조경묘 위패는 당연히 민영승의 총책임하에 경기전 참봉 장교원과 조경묘령 박동래가 주도하여 수행한 것으로 정리하였다. 위봉산성에 이안된 어진과 위패는 바로 행궁에 봉안되지 못하였다. 그것은 행궁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먼저 위봉산성 안에 있는 위봉사 본전에 이안되었고, 진장청을 거쳐 행궁으로 이안되었다. 이렇게 지켜진 어진과 위패는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에서 철수한 뒤, 다시 경기전과 조경묘에 환안되었다.
목차
Ⅰ. 머리 글 Ⅱ. 태조 어진의 이안을 주도한 인물들 Ⅲ. 태조 어진의 위봉산성 이안과 봉안 Ⅳ. 마무리 글 <국문초록> <참고문헌>
키워드
민영승장교원경기전태조 어진조경묘 위패위봉산성행궁위봉사Min-yeongseungJang-gyowonPark-donglaeJeonjuseongGyeong-gijeonthe portrait of King Taejowibongsawibongsanseong.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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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