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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년 고구려의 우산성 공격 의미와 나⋅제의 대응
The Meaning of Goguryeo’s Attacking on Usanseong in 496 and the Response of Silla and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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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6호 (2019.07)바로가기
  • 페이지
    pp.5-34
  • 저자
    김병남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6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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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study is a new approach to the meaning of Goguryeo’s attack on Usanseong of Silla in the late 5th century, one of a watershed of the alliance between Silla and Baekje. Goguryeo’s southern extension policy in the late 5th century was one of the main factor that it made the relation between Silla and Baekje close. For it dealt two nations a blow. But a Usanseong case in 496 that there is not Baekje’s support raised a question to their alliance. Usanseong that Goguryeo took by attacking in 496-97 is equal to Ubeolseong referred to Chungju Goguryeo Stele where it was the military base for Goguryeo’s attack on Silla in the beginning of the 5th century. It was also the place related to Joda, a son of Jangsu and father of Munja of Goguryeo. He met Silla King in Chungju by proxy of Jangsu, and put pressure on Silla with an army. So Munja focused on taking Usanseong where Joda hung out mostly for strengthening of royal authority. Meanwhile, Baekje was in trouble with frequent nature disasters. There were many events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in Baekje, e.g. a change of the leader of army in 497, Silla’s extension to Gaya in 496, and Dongseong of Baekje’s conquest of southwest seaside area in 498. These events in 496-500 show that Baekje could not concentrate on the alliance against Goguryeo.
한국어
이 논문은 5세기 말 나⋅제 동맹의 중요 분수령의 하나로 주목되는 고구려의 신라 우산성 공략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새로이 접근하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5세기말 고구려의 남진 강화는 백제와 신라의 밀착 관계를 형성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 고구려의 남하 공세는 백제와 신라에게 타격을 주었기에 양국은 동맹의 지속을 모색하였다. 하지만 496년 고구려의 신라 우산성 공격 시 백제의 지원이 나타나지 않음으로서 동맹에 대한 물음표가 제시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496~97년에 걸쳐 고구려가 공격하여 차지한 신라 우산성은 「충주고구려비」에 언급된 우벌성과 동일한 곳으로, 5세기 전반 무렵 고구려가 소백산맥 이남의 신라 지역을 경영하는 중심지였다. 또한 이 우벌성은 장수왕의 아들이자 문자왕의 아버지인 助多와 관련된 곳이다. 「충주고구려비」에 태자 共이라 기재된 조다는 장수왕을 대리하여 고구려의 남방 거점인 충주(중원)까지 내려와 신라왕과 대면하고, 또 신라와 관계가 경색되면 군대를 이끌고 압박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고구려 문자왕이 우산성에 주목한 이유는 왕실의 정통성 확립과 왕권의 안정적인 기반을 위해 아버지인 조다의 위상 확보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조다의 주 활동 무대인 우산성을 차지함으로서 왕권의 강화에 활용하고자 한 것이다. 한편, 백제는 이 시기 자연재해의 빈발로 곤경에 처해 있었다. 아울러 우산성 전투(496년 7월)에 앞선 496년 2월 가야의 신라 접근, 497년 병관좌평의 교체 문제, 다시 498년 중앙집권력의 약화로 독자적인 대외 활동을 도모하던 서남해안 지역의 탐모라(강진⋅해남)에 대한 동성왕의 친정 시도 등 대내외적인 사건이 집중되었다. 이처럼 496~500년에 걸친 일련의 상황은 구조적으로 고구려에 대항하는 동맹에 주력할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우산성 전투 이전의 상황
Ⅲ. 고구려의 우산성 공격 이유
Ⅳ. 백제의 우산성 미대응 원인
Ⅴ.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문헌>

키워드

우산성 우벌성 문자왕 조다 나⋅제 동맹 Usanseong Ubeolseong Munja of Goguryeo Joda Alliance between Silla and Baekje

저자

  • 김병남 [ Kim, Byung-Nam | 국가기록원 학예연구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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