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현재 위치 Home

특집: 일본·일본인과 3.1운동

3.1운동 전후 조선인의 군사적 이용에 관한 일본 육군 내 논의
The Debate on Military Use of Colonial Koreans in the Japanese Army Before and After the March First Movement

첫 페이지 보기
  • 발행기관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일본비평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21호 (2019.08)바로가기
  • 페이지
    pp.14-41
  • 저자
    박완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6003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6,700원

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First World War (1914~18) and the March First Movement (1919) shook the ruling order of Japanese imperialism. With these events as the momentum, Imperial Japan, as well as Japanese Army, sought the reorganization of imperial ruling order. The Japanese Korean Army (Chosen-gun) was optimistic about the possibility of assimilating colonial Koreans and using them in the military. Therefore, to promote the assimilation of Koreans, the Army insisted that Military Academy should be open to Koreans and Korean volunteer units should be organized. Also, the reinforcement of deployed forces in Korea was requested, partly to accept Koreans into the Army. These stances remained firm in spite of the shock from the March First Movement. On the other hand, the Ministry of War (Rikugunsho) focused on political, economic, and military legitimacy. For them, the military use of colonial Koreans was the final goal to be realized after assimilating Koreans enough for the conscription law to be enforced in Korea. Also, the March First Movement weakened their optimism about the possibility of such assimilation. As a result, the Ministry of War remained negative to the military use of Koreans until the mid-1930s.
한국어
1914~1918년의 제1차 세계대전 및 1919년의 3.1운동의 발발은 일본의 제국 지배 질서를 동요시켰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기존의 제국 지배 질서의 재편을 모색하게 되었으며 이는 육군도 마찬가지였다. 그중 아카시 모토지로, 이구치 쇼고, 우쓰노미야 다로 등 조선헌병대 혹은 조선군에서 활동한 이들은 영국·프랑스 등 구미 제국의 식민지 군대의 선례를 중시하였고, 또 병합 직후부터 식민지 조선인의 ‘동화’ 및 그 군사적 이용 가능성을 낙관하였다. 따라서 조선에서 징병을 실시할 수 있을 만큼의‘동화’를 촉진한다는 조선 지배 정책의 측면에서 조선인에게 육사의 문호를 개방하거나 조선인 지원병 부대를 편성하는 등 군이 앞장서서 조선인을 군사적으로 이용할 것, 그리고 이를 전제로 하여 조선주둔 병력을 증강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3 .1운동의 충격 속에서 더욱 절실해졌다. 반면 주로 육군 중앙에서 활동한 다나카 기이치는 러일전쟁 이후 대러시아 작전·군비라는 당면의 목표,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 예산과 국내 정치적 환경이라는 정치·경제·군사적 합리성을 중시하였다. 그에게 조선인의 군사적 이용은 조선에서 징병을 실시할 수 있을 만큼의 ‘동화’가 이루어진다음에야 실행할 수 있는 최종적인 목표에 불과했으며, 또 조선인을 일본 군대에 받아들이기 위해 조선군을 증강한다는 발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3.1운동의 발발은 조선인의 ‘동화’ 가능성에 대한 기존의 낙관적 인식을 약화시켰다. 따라서 그는 조선인 장교의 재생산, 조선인 부대 편성및 이를 전제로 한 조선군 증강에는 소극적이었다. 이와 같은 조선인의 군사적 이용에 관한 조선군과육군 중앙의 대립은 193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목차

1. 들어가며
2. 한국 병합 이전의 ‘토병’(土兵) 문제
3. 3.1운동 전후 조선인의 군사적 이용에 대한 조선군의 인식
4. 조선인의 군사적 이용 문제에 대한 육군 중앙의 인식
5. 나가며

키워드

제1차 세계대전 3.1 운동 일본 육군 조선군 우쓰노미야 다로 다나카 기이치 the First World War the March First Movement the Japanese Army the Japanese Korean Army (Chosen-gun) Utsunomiya Taro Tanaka Giichi

저자

  • 박완 [ PARK Wan | 강릉원주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Institute for Japanese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 설립연도
    2004
  • 분야
    사회과학>지역학
  • 소개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일본 연구를 통하여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4년11월19일 설립되었다. 본 연구소는 서울대학교에서 일본지역학의 교육ㆍ연구 체제를 갖춘 국제대학원이 주관하며, 서울대학교의 다양한 학문 분야의 일본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교수, 연구자들이 모두 참여하여 운영된다. 일본관련 자료의 수집과 정리, 정보네트워크 구축, 연구활동 지원, 대외적인 학술ㆍ인물 교류 등 일본연구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그간의 실적을 토대로 하여 새롭게 출범한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는 오늘날 국내외 정세의 변화를 배경으로 일본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한국의 일본 연구 및 교육의 발전에 기여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일본연구의 새로운 틀을 창출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일본비평 [Korean Journal of Japanese Dtudies]
  • 간기
    반년간
  • pISSN
    2092-6863
  • 수록기간
    2009~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309 DDC 306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일본비평 제21호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이 논문을 다운로드한 분들이 이용한 다른 논문입니다.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