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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화관 영접의식 ‘헌가’의 양식과 의미
A study on the origin and meaning of Heonga of Mohwagwan established in national welcoming ceremony during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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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국악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국음악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65집 (2019.06)바로가기
  • 페이지
    pp.175-190
  • 저자
    윤아영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59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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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Heonga(헌가, lit. instruments on the royal court) of Mohwagwan(모화관, lit. house representing of admiring china) which had been established in yeongjeobuisik(영접의식), the national welcoming ceremony was regarded not as music or its formation but as mountain-shaped stage in spite of sharing the same name with one performed inside the royal court. However heonga of Mohwagwan was presumed to be the musical stage presented by musicians of the official musical organization, Jangagwon(장악원), because the relevant records show the evidence of the musical instruments and the participation of Jangagwon. Heonga of Mohwagwan in the national welcoming ceremony might have played a representative role that shows the highest diplomatic level of royal welcoming ceremony rituals as Heonga inside the royal palace yard had. Originally, heonga of Mohwagwan formed as two stages had been a long tradition of Joseon dynasty at least since the king Sejong’s reign, had been reduced one stage because of diplomatic climate change with china and the burden of structuring expense. Also, after the war Byeongja Horan(병자호란, lit. Second Manchu invasion of Korea) in 1637, Heonga had changed from playing Heongaak(헌가악, lit. music of the royal court) to presenting decorations with puppets because of loss of musicians and instruments and diplomatic climate change between two countries. Therefore, the mountain shaped stage depicted on the painting (1725, the first year of king Yeongjo’s reign) was not the same with the one before the war Byeongja Horean. Heonga had changed to the same object to yungeo(윤거, lit. pulling stage) or sandae(산대, lit. mountain-shaped stage) because of these changes, therefore it had became considered as an useless object, and it had been often told abolition of it. However, as Heonga had still has purpose of entertaining visitors and indispensable symbol representing auspicious occasion, the ostensible could last till the end of Joseon dynasty.
한국어
영접의식 중 모화관에 설치된 ‘헌가(軒架)’는 전정헌가와 같은 악대나 음악과는 무관한 것으로 산대와 동물이칭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인조 12년까지만 하더라도 모화관 ‘헌가’는 그 주변이나 위에서 장악원의 악공이 악을 연주했던 무대장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화관에서의 영접의식에는 장악원이 전정헌가의 편종 편경을 비롯한 각종 악기들을 갖추고 참여하였다는 기록에 의해 전정에서의 헌가악과 같은 음악을 연주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모화관에서의 ‘헌가’ 설치와 헌가악의 연주는 황제의 조칙을 들고 오는 사신이 입경했을 때, 전정헌가와 같은 가장 큰 규모의 악대로 환영한다는 상징적인 예를 나타내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래 모화관 영접의식의 ‘헌가’는 양변에 각각 일기(一機)씩 조성되는 것이 전통이었으나 대외관계의 변화 및 비용 부담 등의 이유로 병자호란 이후로 한쪽 변에만 설치하는 것으로 축소된 것 같다. 더불어 악공이나 악기 등도 흩어져 헌가악의 연주는 불가능해졌으므로 생략되고 잡상만을 진열하는 의물 역할로만 남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영조 원년 <봉사도>에 묘사된 모화관 영접시 헌가산대는 한 대만 남은 것으로, 장악원 악공의 연주도 빠진 잡상만 설치된 형태로 변화된 것이다. 병자호란 이후 모화관 영접의식의 ‘헌가’는 헌가악의 연주를 동반하던 양식에서 잡상만 진열하는 의물로 축소됨에 따라 무용한 것으로 여겨져 폐지가 주장되었다. 그러나 헌가는 발생과 함께 빈객을 즐겁게 하고 경사를 상징하는 필수 불가결한 증표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으므로 명목만이라도 영접의식이 지속되는 한 폐지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모화관 영접의식 ‘헌가’의 양식과 변천
1. 모화관 영접의식 ‘헌가’의 양식
2. 모화관 영접의식 ‘헌가’의 축소와 생략
Ⅲ. 모화관 영접의식 ‘헌가’의 지속과 의미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헌가 모화관 영접의식 장악원 헌가악 산대 병자호란 Heonga Mohwagwan yeongjeobuisik Heongaak sandae Jangagwon Byeongja Horan

저자

  • 윤아영 [ Yoon, Ah-young | 백석예술대학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국악학회 [Korean Musicological Society]
  • 설립연도
    1948
  • 분야
    예술체육>음악학
  • 소개
    한국국악학회는 국악을 연구하여 음악학 및 민족음악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1948년 4월 봄에 이혜구, 장사훈, 성경린, 이주환 외 15명의 발기로 발족하여 1963년 12월 14일 사단법인체로 인가취득한 이래 1) 국악의 연구발표 2) 국악 관계자료서 수집 3) 국악에 관한 전시회 및 강연회 개최 4) 국악에 관한 출판사업 5) 국내의 학계간 교류 등의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본 학회는 국악의 연구발표를 4000여회에 가까운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20회에 걸친 국악기 및 국악서적 전시회를 열고 3회의 신국악작곡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특히 학회에서는 1971년 한국음악연구 제1집을 발간한 이래 현재 제45집 출판에 이르렀으며, 30여종의 고악보 간행, 이혜구 박사 송수기념 음악학 논총, 장사훈 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 등 30여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또한 1989년 제1회 국악학 전국대회를 열어 한국음악의 쟁점이 되는 주제를 선정하여 전국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75년 한·일간의 고려악 연구회를 발족시켜 일본의 음악학자들과의 공동연구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으며, 1981년에는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서울대회를 치뤄내고, 1994년에는 제1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서울에서, 1999년에는 제6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수원에서 성황리에 치뤄내는 등 외국학회와 교류에 힘써왔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국음악연구 [STUDIES IN KOREAN MUSIC]
  • 간기
    반년간
  • pISSN
    1975-4604
  • 수록기간
    1975~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679 DDC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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