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에서는 조일전쟁 (1592-98) 당시 일본 육군의 두 주력부대 인 제1군과 제2군의 사령관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 사이에 있었던 갈등의 양상을 살펴본다. 이 두 장군은 규슈의 히고국 출신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가문적 배경의 차이와 종교적 차이 등 으로 인한 갈등이 일본 입장에서는 전쟁의 목표 달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조선의 지리와 풍습에 관한 정보가 더 많았 던 고니시가 히데요시로부터 제 1군 사령관으로 임명받고 부산에 제일 먼저 상륙하게 되는데, 이 때부터 고니시는 제2군의 가토를 따돌리고 단독으로 충주를 향해 진격한다. 공격 루트를 달리한 가토의 제2군은 충주까지 전투다운 전투 한 번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한 반면 중앙로를 장악한 고니시의 제1군은 부산, 동래전투에 이어 상주 및 충주 탄금대 전투를 모조리 일방적 승리로 이끌음으로써 군인으로서 의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장악한다. 충주부터 다시 시작된 한성입성 이라는 경쟁에서조차 고니시가 선점을 하게 됨으로써 가토와의 갈등은 전쟁이 지속되어 갈수록 깊어진다. 한성 점령 후 있었던 일본군 장군들 의 한성회의에서 조선팔도국할지배에서 고니시는 평안도를 담당하고 가 토는 함경도를 담당하게 되는데, 일본의 명나라 침공이라는 전쟁명분의 입장에서 본다면 명나라 방면의 평안도를 맡은 고니시가 전략적 가치 가 없는 함경도를 담당하는 가토와의 경쟁에서 사실상 이겼음을 알 수 있다.
제주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Institute for Humanities, cheju National University]
설립연도
1995
분야
인문학>기타인문학
소개
본연구소는 문학, 언어학, 역사학, 철학, 예술 교육 등 개별 학문의 발전은 물론, 이러한 여러 분야의 협동 연구를 활성화하여 인문학 전체 발전에 기여하기 의해 설립되었다.
이를 위해 대학의 연구거점을 구축하고 연구성과를 활용한 대학의 교육기능 보완 및 연구의 심화를 통해 대학의 연구경쟁력 제고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우수한 젊은 연구자 양성과 인문학을 이끌 학문 후속세대양성을 촉진하고, 신진학자들의 발표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지역에 적합한 이른바 제주형 인문학의 연구를 활성화하여 제주국제도시의 개발과 발전을 위한 인문학적 콘텐츠를 개발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