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reinterpret the sex and eroticism in the paintings of Egon Schiele as a sense of memories of pain and satisfaction. In art, eroticism is a framework for interpreting works that evoke sexuality and sexual excitement. There is no civilization that officially praises sexuality and eroticism, but there is no civilization based on the power of sexual desire. Since S. Freud, the persistent discontent of human beings who have to live in the oppression of civilization has been formulated, and the eroticism of art expressing the liberated human dreams has been recognized as worthy of the obscenity which implies the indulgence. However, the sexual excitement felt by humans, or the intensity of eroticism that evokes it, is not necessarily proportional to the intensity of exposure. If you look at the various erotic paintings of East and West, eroticism is a strategy that focuses more on hiding genital and body than on the exposure of them. The person in the picture should be a passive subject that overlaps with resistance, shame, and a soulful wind rather than an active subject to realize desire in order to bring out sexual desire. Is eroticism the only framework for interpreting Schiele s work? This is the question of this paper. If you think of eroticism as proportional to the intensity of exposure, it is eroticism. But if the intensity of exposure is not the only criterion of eroticism, and if the impression of the genital hurts eroticism, the work of Schiele is on two roads. It is a crossroad of low-level eroticism, that is, art that can not be fully grasped by the framework of obscenity or eroticism. This paper attempts to reinterpret the genitalia, nipples, and lips that appear in the work of Schiele with a keen sense of satisfaction, which does not lose its naturalness. I would like to present the Eros and Civilization of H. Marcuse who philosophically extended Freud as a framework of reinterpretation. This interpretation does not deny eroticism, but reveals a point that is not recognized as eroticism. To this end, I keep track of the value that he gave to his work in a diary arguing himself during the Noelungbach incident.(Ⅱ) Through this, Schiele made an argument to distinguish sex from life and art , It is revealed how he justifies sexual expression in art. Second, I present the theoretical framework of the reinterpretation of Schiele s artwork Eros and Civilization of Marcuse, the critic theorist who accepted Freud s psychoanalysis.(Ⅲ) This process reveals the suppression of civilization, the loss of naturalness, and the implication of a sense of memory that resists eros, that is, pain and satisfaction. Third, I analyze the genital impression works of Schiele by the framework of the senses that remember pain and satisfaction.(Ⅳ) In this process, it will be revealed that he is a painter who records senses by the sense between senses loss and senses preservation in the late 19th century where the oppression of civilization was maxim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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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E. 실레의 회화에 나타난 성과 에로티시즘을 고통과 만족을 기억하는 감각 으로 재해석 하는 것이다. 예술에서 에로티시즘은 성과 성행위 그리고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 는 작품을 해석하는 틀이다. 성과 성행위 그리고 에로티시즘을 공식적으로 찬양하는 문명은 없 지만 성적 욕구가 가진 힘에 기반 하지 않는 문명도 없다. S. 프로이트 이후 문명의 억압 속에 서 살아야 하는 인간의 항구적 불만이 정식화되었고 해방된 인간의 꿈을 표현하는 예술의 에로 티시즘은 성방종을 종용하는 외설과 달리 가치가 인정되었다. 그런데 인간이 느끼는 성적 흥분 또는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에로티시즘의 강도는 꼭 노출의 강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동서 고금의 다양한 에로티시즘 회화를 살펴보면 에로티시즘은 성기의 노출보다 성기와 몸의 적절한 감춤을 전략으로 삼는다. 그림 속 인물이 성적 욕구를 불러일으키려면 욕구를 실현하려는 적극 적 주체이기 보다는 저항과 부끄러움 그리고 은근한 바람이 중첩된 소극적 대상이어야 한다. 실레의 작품을 해석하는 틀은 에로티시즘뿐인가? 이것이 이 논문의 질문이다. 에로티시즘을 노출의 강도에 비례한 것으로 본다면 실레는 에로티시즘이다. 그러나 노출의 강도가 에로티시 즘의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면, 더구나 성기의 노출이 에로티시즘을 해친다면 실레의 작품은 두 갈래 길에 놓인다. 수준 낮은 에로티시즘, 즉 외설이거나 에로티시즘이라는 틀로 충분히 파악할 수 없는 예술이라는 갈림길이다. 본 논문은 에곤 실레의 작품에 나타난 성기, 유두, 입술 등을 자연성을 상실하지 않은, 만족을 기억하는 예민한 감각으로 재해석하려 한다. 나는 재해석의 틀 로 프로이트를 철학적으로 확장한 H.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 을 제시하려 한다. 이러한 해 석은 에로티시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에로티시즘으로 파악되지 않는 지점을 드러낸다. 이를 위해 첫째, 실레가 노이렝바흐 사건 때 자신을 변론하는 일기 속에서 그가 자신의 작품 에 부여한 가치를 추적한다.(Ⅱ) 이를 통해서 실레는 일상에서의 성과 예술에서의 성을 구별하 는 변론을 하였으며, 그가 예술에서 성적 표현을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하고 있는지 밝혀진다. 둘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비판이론가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 을 실레 작품 재해석의 이론적 틀로 제시한다.(Ⅲ) 이 과정에서 문명의 억압과 자연성의 상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에로스, 즉 고통과 만족을 기억하는 감각의 함의가 밝혀진다. 셋째, 고통 과 만족을 기억하는 감각의 틀로 실레의 성기 노출 작품을 분석한다.(Ⅳ) 이 과정에서 실레는 문명의 억압이 극대화된 19세기 말, 인간의 감각 상실과 감각 보존 사이에서 감각을 감각으로 기록한 작가라는 점이 밝혀질 것이다.
목차
요약문 1. 들어가기 2. 노이렝바흐 사건과 실레의 변론 3. 억압적 문명과 감각의 회복 4. 고통과 만족 기억 회복과 재성기화 5. 나가기 참고문헌 그림목록 Abstract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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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