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 Korea set up 5-years economic development plan prior to heavy industry in 1956, and wanted China, Soviet to aid them. China wasn't in favor of North Korea's demand, becase North Korea incapacitated China's intervention in the 'August sectarian incident'. But China's attitude was changed in the mid 1957. Conflict of Sino-Soviet communism was begun. As Sino-Soviet conflict intensified so did their competition over north Korea. China prioritized giving aid to North Korea over solving domestic hardships in order to maintain and improve friendly ties with North Korea. China's presence in North Korea has become equal to what the Soviet Union has accomplished by around 1958. and North Korea took pro-Chinese economic line. As a result, China was able to guard their own interests in North Korea when Conflict of Sino-Soviet communism was begun.
한국어
북한은 1956년 중공업 우선의 5개년 경제계획을 수립하고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 의 국가에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에서 1956년 발생한 '8월 종파사건' 시 자국의 권유를 이행하지 않은 북한에게 원조 관련하여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중국의 태도는 1957년 중반기부터 바뀌기 시작하였다. 중-소 양국 공산 당 사이에서 이념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러한 중-소의 관계변화는 북 한의 전략적 가치를 상승시켰고, 중국과 소련은 북한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경쟁을 하였다. 중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원조에 대해서는 자국보다도 우선적이었다. 결국 중국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58년을 기준으로 북한에서 전 분야에 걸쳐 소련과 대등한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북한으로 하여금 소련보다는 중국의 경제 정책을 모방하고 추종하도록 하였다. 중국은 북한에서 자국의 국가이익을 지켜냈다고 할 수 있겠다.
목차
<국문요약> Ⅰ. 서론 Ⅱ. 북한의 경제계획과 원조요청 Ⅲ. 중-소 분쟁의 시작과 경쟁적 대북한 원조 Ⅳ. 중국의 대북한 원조 성과 Ⅴ. 결론 <참고문헌>
키워드
중·북 관계원조중·소 관계China·North Korea relationsAidSino-Soviet relations
저자
임방순 [ Im Bangsoon | 멘토평생교육원 강사, 북한학박사 ]
제1저자
한마크만균 [ Mark MK Han | 한국공공사회연구소,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건법학박사 ]
교신저자
인문사회과학연구소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예술 분야의 연구를 진작시키고 활성화시키기 위해 1999년에 설립되었다. 설립 이후 연구진의 원활한 연구 활동 지원 및 연구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능별로 총무부, 교육부, 편집부, 연구부, 사업개발부로 업무영역을 나누어서 학술지 및 학술 도서의 출판, 기획도서 발간, 심포지엄 개최, 초청강연, 공개강연, 특강, 콜로키움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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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연구 [Institute for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