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was confirmed that Catholics resided in Yongin area far before 1799, and during 1810s to 1820s, believers gathered in Eunnni and Gul-am, forming religious communities. As missionaries entered the country in 1830s for pastoral activities, many Gongso were settled in the mountainous areas of Yongin during the period of 1830s to 1860s. During this time, Namgok-ri and Daedae-ri regions in Yangji-myeon, Muk-ri and Seo-ri regions in Idong-Eup, Hakil-ri and Saam-ri regions in Wonsam-Myeon, Dongchen-dong Songol regions in Suji-gu were central areas of religious communities in Yongin. The reentry of missionaries in 1876 led to reconstruction of religious communities in Yongin area, where religious communities that were confirmed to be existent prior to 1866 were also included. With the increase of Gongso and expansion of religious influence, Mirinae Parish and Hauhyeon Parish were separately established from Wang-Rim Parish. In 1913, Apgoji Parish that was separated from Mirinae Parish became the first Parish in Yongin Area, and in 1927, Yangji Parish became separated from Mirinae Parish. In 1930, with the closure of Apgoji and Hauhyeon Parishes, Gongso of the subject area were incorporated into Yangji Parish and Buksu-dong Parish. In line with liberation in 1945 and the Korean War in 1950, the Korean Roman Catholic Church made a rapid growth, with Yongin Parish being newly established at the central area of Yongin. With the establishment of Diocese of Suwon in 1963, the Yongin area was incorporated into Diocese of Suwon. Afterwards, Diocese of Suwon established multiple Parishes with rapid progress of industrialization, urbanization, and inflow of many external believers, for which currently there exist 30 Parishes in Yongin area as of 2018. There have been many hardships for religious communities to root within Yongin area, however, with the efforts of the clergy and believers, it became a foundation for religious belief, along with legacies and remains of such belief that are handed down to this day.
한국어
용인지역에는 1799년 이전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거주하고 있었음이 확인되며, 1810년대에서 1820년대에 걸쳐 은이와 굴암에 신자들이 모여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 1830년대에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사목활동을 하자 1830~1860년대에 용인의 산골지역에 많은 공소가 자리잡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양지면 남곡리와 대대리 지역, 이동읍 묵리와 서리 지역, 원삼면의 학일리와 사암리 지역, 수지구 동천동 손골이 용인 신앙공동체의 중심 지역이었다. 1876년 선교사의 재입국을 계기로 용인지역에서 신앙공동체가 재건되었는데 1866년 이전부터 확인되는 신앙공동체도 포함되어 있었다. 공소가 증가하고 교세가 확장되면서 왕림본당에서 미리내본당(1896년)과 하우현본당(1900년)이 분리 신설되었다. 1913년에는 미리내본당에서 분리된 압고지본당이 최초의 용인 지역 본당이 되었고, 1927년 양지본당이 미리내본당에서 분리되었다. 1930년 압고지본당과 하우현본당이 폐쇄되면서 그 관할 공소가 양지본당과 북수동본당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과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한국천주교회는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용인 중심지에 용인본당(1959년)이 신설되었다. 1963년 수원교구 설정으로 용인지역은 수원교구에 편입되었다.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외부에서 신자들이 많이 유입되자 수원교구는 많은 본당을 신설하여 2018년 현재 용인지역에 30개 본당이 자리 잡게 되었다. 용인지역에 신앙공동체가 뿌리내리기까지 온갖 우여곡절과 시련이 있었지만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노력으로 신앙의 터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 신앙의 유산과 유적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천주교의 용인지역 전파와 신앙공동체의 형성 1. 용인지역의 천주교 전파 2. 용인지역 천주교 신앙공동체의 형성 Ⅲ. 용인 천주교회의 발전과 신앙유산의 계승 1. 개항기 용인 천주교회의 재건 2. 일제 강점기 용인지역 본당의 설정과 변화 3. 해방과 수원교구 설정 이후 용인 천주교회의 발전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용인 천주교공소은이굴암손골압고지본당양지본당용인본당Roman Catholic community in Yongin DistrictGongsoEunnniGul-amSongolApgoji ParishYangji ParishYongin Parish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설립연도
2003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