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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순조 즉위 초 서교 금압책의 형정적 전환과 사옥(邪獄)
The Changeover to Penal Administration of The Prohibition Policy against Catholicism in the Early Period of The King Sunjo(純祖)'s Reg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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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수원교회사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교회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15호 (2018.12)바로가기
  • 페이지
    pp.159-207
  • 저자
    강슬기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47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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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thesis demonstrated how the prohibition policy against Catholicism has been gradually developed in the Early Period of The King Sunjo(純祖)'s Regime. It focused on the primary cause that the government in the 19th Century adopted the expulsion of wickedness, the most extreme and conservative, as their keynote among various layers of Catholic policy and implemented a penal administration named ‘Saok’, In order to control the religion. By doing so, the paper sought to shed light on the early stages of the 19th century's ‘Chuksawijeong(斥邪衛正)’ theory, the background and process of its formation. The spread of Catholic groups in Joseon heightened the authorities’ anxiety over the overthrow of the system. The government had come to regard Catholic faith as a serious crime. They tried to turn traditional policy of enlightenment against heresy into a punishment centered on penal administration. In order to rationalize it, the Catholicism was conceptualized as an inevitable subject for the penal administration and the theory of expulsion of wickedness was established. The government also pushed ahead with ‘Saok’, a nationwide ban, despite the problems of legal legitimacy, various social negative effects and the dangers of public betray. In 1801, the Saok was developed in a total of four stages. First, it was the arrest of Nam-in(南人) and men and women related to Jeong Yak-jong, second, the nationwide search for Catholic, third, the arrest of Father Zhou Wen-mo and the inquiry into suspicion of revolting, fourth, the exposure of high treason of Yoo Hang-gum, Hwang Sayoung, etc. and settlement of it. The Saok became a specific and clear standard for the punishment of Sahak(邪學), and it was legalized through Queen Jeong Soon's proclamation of ‘Tosabankyomun(討邪頒敎文)’. This was considered Joseon Dynasty's basic policy for the Catholic over the next 80 years as a norm of the ever-present for correction of Catholic. Although the government has achieved its desired results in the suppression of Catholic through Saok that is more institutionalized than before, that revealed the limitation of not accepting the growth of public consciousness and social change in the late 19th century, but merely using the Saok as a temporizing measure, and repeating only rigid responses.
한국어
본고는 순조 즉위 초 조선 정부가 서교 대응의 다양한 층위에 있어 가장 극단적·보수적 형태인 척사를 서교 정책의 기조로 채택하고, 사옥이라는 형정을 도입하여 서교도들을 징치하게 되었던 원인과, 19세기 척사위정론의 초기 단계, 그 원형이 형성되는 배경 및 과정을 서교 금지방안의 단계적 변화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밝혀보고자 하였다. 서교 집단의 확산이 체제 전복에 대한 불안을 가중 시키자, 정부는 서교 신앙을 심각한 범죄행위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들은 정조대의 전통적 이단 교화정책을 형정 위주의 징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합리화 하기 위해 서교를 형정이 불가피한 대상인 사학(邪學)으로 개념화하며 척사의 논리를 세워갔다. 또한 법적 정당성의 문제, 각종 사회적 폐단과 그로 인한 민심 이반의 위험을 무릅쓰고도 전국적인 규모의 서교 금압책인 사옥을 강행하였다. 1801년의 신유사옥은 총 네 단계의 과정으로 전개되었다. 첫째, 남인사대부 및 정약종 관련 인물 체포, 둘째, 전국적 범위의 서교도 색출, 셋째, 주문모 신부의 체포와 모반 혐의의 추궁, 넷째, 유항검, 황사영 등의 체포로 인한 대역모반죄의 처결이었다. 사옥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학 처벌기준이 되어 정순왕후의 토사반교문 반포를 통해 법제화 되었고, 이는 항상적인 서교징치의 규범으로서 이후 80년 동안 서교 대응에 대한 국가의 기본 정책으로 간주되었다. 정부는 이전보다 제도적으로 향상된 서교 금압책인 사옥을 통해 서교 탄압에 대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후 위정(衛正)의 방안으로 확립된 사옥의 집행을 거듭하며 19세기 말 민의식의 성장과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경직된 대응만을 고식적으로 되풀이 하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순조 즉위 초 서교 인식의 변화와 금령의 설치
Ⅲ. 사옥의 집행과 항상적 징치(懲治)의 법제화
Ⅳ. 맺음말
참고문헌

저자

  • 강슬기 [ Kang, Seul-gi | 성결대학교 신학과 Th.M 통합과정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 설립연도
    2003
  •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5377
  • eISSN
    2713-6027
  • 수록기간
    2004~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36 DDC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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