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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반 半島苦學生親睦會 硏究
A Study of Working Student's Club in the Peninsula(半島苦學生親睦會) in Early 1920s
1920년대 초반 반도고학생친목회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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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숭실대학교 역사문물연구소(구 숭실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숭실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41집 (2018.12)바로가기
  • 페이지
    pp.175-196
  • 저자
    박성순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44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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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Pacific Conference was held in Washington, U.S. from November, 1921 through February, 1922.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accepted it as an urgent and very important chance for Korean independence. Therefor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built a TF, so-called the Diplomatic Supporter's Association for Pacific Conference(對太平洋會 議外交後援會) in Shanghai, China, in 13th, August, 1921 to support the tasks about Pacific Conference. An independence activist Jang Hyeong also built a student's organization, Working Student's Club in the Peninsula(半島苦學生親睦會) in Seoul, Korea in the same day. This organization was not only pure student's club but also special purposed temporary organization made by the Society for Promotion of Commerce and Industry(商工振興會). The Chairman of this Society was also Jang Hyeong. He held two chairman's position in a same tim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dispatched a special agent, Yeo Wun-hong into Korea to help the works about Pacific Conference. The organization with which he worked at first in Korean Peninsula was just Working Student's Club in the Peninsula. He tried to get independence funds for Pacific Conference while participating in activities of Working Student's Club in the Peninsula touring in whole country. He took a very important position in this organization. Working Student's Club in the Peninsula was a special temporary organization made in concert with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to get concern and funds of Korean people about Pacific Conference for Korean independence.
한국어
1921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현안문제를 다루는 태평양회의가 진행되었다. 임시정부는 태평양회의를 ‘절실하고 중대한 생사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태평양회의에 참가하는 한국 대표단과 관련 업무를 후원할 목적으로, 8월 13일 상하이에 서 임시의정원 의장 홍진 주재로 대태평양회의외교후원회를 조직하였다. 같은 날 국내에서는 서울에서 독립운동가 장형을 총재로 하는 반도고학생친목회가 조직되었다. 반도고학생친목회는 고학생 단체를 표방하였으나, 실제로는 순수 학생 조직이라기보다 민족운동가 들로 구성된 상공진흥회에서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별도로 조직한 임시 기구였다. 상공진흥회의 본부회장 역시 장형이었다. 장형은 반도고학생친목회를 별도로 조직한 후 총재직을 겸직하였다. 임시정부의 대태평양회의외교후원회에서는 태평양회의에 대한 국내에서의 여론 환기와 소용 경비의 마련을 위해서 서무간사 여운홍을 국내로 파견하였다. 여운홍이 국내로 들어와 함께 활동 한 조직은 바로 반도고학생친목회였다. 반도고학생친목회는 전국 순회강연을 진행하면서, 태평양 회의의 소용 경비를 마련하는 데 힘썼다. 여운홍은 이 단체의 고문과 연사로서뿐만 아니라, 실질 적으로 반도고학생친목회의 활동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한편 임시정부가 한국독립 청원서인 「한국인민치태평양회의서」를 만들어서 워싱턴에 있는 태 평양회의 주최 측에 전달했을 때 반도고학생친목회 측에서는 총재 장세담(장형의 이명), 부회장 김시규, 고문 김준 등이 각각 이 문서에 서명 날인하였다. 반도고학생친목회는 태평양회의에 총력 을 기울인 임시정부의 노력에 호응해서 국내에서 특별히 구성되었던 임시 조직이었다.

목차

I. 머리말
II. 반도고학생친목회의 조직과 활동
1. 반도고학생친목회의 조직
2. 반도고학생친목회의 활동
III. 임시정부 국내 파견 간사와 활동 공조
1. 태평양회의에 대한 임시정부의 기대와 대응
2. 여운홍의 국내파견과 반도고학생친목회의 성격
IV.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키워드

대한민국임시정부 태평양회의 장형 상공진흥회 반도고학생친목회 독립운동자금 모집 여운홍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Pacific Conference Jang Hyeong the Society for Promotion of Commerce and Industry Working Student's Club in the Peninsula fund raising for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Yeo Wun-hong

저자

  • 박성순 [ Park, Sung Soon | 단국대학교 교양교육대학 부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숭실대학교 역사문물연구소(구 숭실사학회) [The Center for History and Human Heritage]
  • 설립연도
    1983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1983년에 조직되어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역사이론, 고고학, 미술사, 과학사 등 역사학과 인접학문의 우수한 논문을 폭넓게 소개하여 역사학 연구자들의 연구역량을 강화하고 회원 상호간의 긴밀한 교류의 장을 만들고자 조직하였다. 숭실사학회에서는 정기적인 학술발표 지속적으로 개최해 왔으며, 연 1-2회에 걸쳐 학술지 '숭실사학'을 발간해 왔다. 앞으로도 숭실사학회에서는 회원들의 연구 활동이 꾸준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보다 정기적인 학술강연회 및 월례발표, 단행본의 출간, 및 답사활동 등을 통해 보다 내실 있는 학회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숭실사학 [SOONG SIL SAHAK(The Historical Review of Soong Sil University)]
  • 간기
    반년간
  • pISSN
    2005-9701
  • 수록기간
    1983~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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