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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풍수론과 수원 화성 - 길, 산수, 비보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
King Jeongjo’s Feng-Shui Theory and Suwon Hwa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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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동양예술 바로가기
  • 통권
    제41호 (2018.11)바로가기
  • 페이지
    pp.89-119
  • 저자
    김병주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4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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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정조는 풍수에 조예가 깊은 왕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익힌 풍수 지식을 토대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기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18세기 말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장과 마찬가지로 화성의 영건 역시 정조의 주도로 이루어진 사업이다. 그런데 간선도로와 읍치의 관계, 읍치 내부의 도로 체계, 산줄기와 물줄기와의 관계에서, 화성은 오히려 풍수의 기본적 내용에 부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삼남대로와 대천은 화성 안을 관통하고 있고, 내부에는 十자형 중심가로가 조성되었다. 주산인 팔달산은 길게 이어지는 용맥을 갖추지 않고 있으며, 닫혀야 하는 수구 또한 크게 열려 있다. 이는 모두 풍수에서 금기시하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정조는 “과거 명사의 큰 계책을 참고하여”, “의산대계”의 모범에 따라 화성에 안온함을 더하는 대대적인 식수와 조림 사업을 명하고 있다. 간선도로와 물줄기가 읍치 내부를 관통하는 것은 둘러싸임에 의해 형성되는 독립된 소우주를 깨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곳과 저곳의 구별, 즉 장소의 정체성이 관통에 의해 허물어지는 것이다. 화성에서는 이러한 “관통과 열림”이 추구되었다. 그러나 화성에서 정조는 대대적인 식수와 조림을 통해서 “안온과 둘러싸임”을 동시에 모색하고 있다. 화성에서는 “관통과 열림”, “안온과 둘러싸임”의 모순된 가치가 동시에 요구되고 있고,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화성에서 개방된 입지와 열린 공간구성이 요구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풍수에 토대를 두는 안온한 읍치의 규범은 뿌리 깊은 것이었고, 화성에서도 그렇게 간단히 포기될 수 없었다. 이러한 “관통”과 “안온”의 길항(拮抗), “열림”과 “둘러싸임”의 길항을 통해 18세기의 근대지향적 도시 화성의 존재 형식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길항의 밑바탕에는 “양택의 풍수는 음택의 그것과 달라야 한다”는 정조의 독특한 풍수 논리가 작용하고 있었다. 정조에 의해 풍수의 논리가 18세기 조선의 상황에 맞게 새롭게 해석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어
正祖は風水に造詣が深い王であった. 自ら身につけた風水の知識をもとに, 父である思悼世子のお墓の遷葬に積極的に関与している. 18世紀末に行われた顯隆園の遷葬と同様に, 華城の營建も正祖の主導によって行われた事業であった. ところで, 幹線道路と邑治の關係, 邑治內部の道路體系, 龍脈と水口と關係において, 華城は風水の基本的內容を揃えていない. すなわち, 三南大路と大川が華城を貫通しており, 內部には十字形の中心街路が造成された. 主山である八達山には長く連なる龍脈がなく, 水口もまた大きく開かれている. これは, すべて風水において禁忌とされることであった. 幹線道路と川が城內を貫通するということは, 安穩さにより形成される小宇宙を破るということを意味する. すなわち, ある場所のアイデンティティが, 貫通によって崩れるのである. 華城では, このような “貫通” が求められた. しかし, 華城において正祖は植樹や造林を通って “安穏” を同時に摸索している. “貫通” と “安穩” という矛盾した價値が同時に求められており, この二つの價値が衝突しているのである. 華城に開かれた立地と空間構成が要求されたということは明らかである. しかし, 風水に基づいた安穩な邑治の規範は根深いものであり, 華城においても, 簡単に諦められなかった. この “貫通” と “安穩” との拮抗から, 18世紀の近代指向的な都市, 華城の存在形式を伺うことができる. そして, このような拮抗の根底には, “陽宅の風水は陰宅のそれと違う” という, 正祖の独特の風水論が働いていた. 正祖により, 風水の理論が18世紀朝鮮の狀況に符合して新しく再解析されているのである.

목차

<논문요약>
Ⅰ. 들어가며
1. 연구의 배경
2. 연구의 목적과 의의
Ⅱ. 입지선정 과정과 정조의 역할
Ⅲ. 삼남대로와 십자로
1. 조선 초기 군현제 정비와 읍치의 변화
2. 간선도로가 우회하는 도시와 관통하는 도시
3. 곧바로 들어오는 길, 충파
4. 읍치 내부의 T자로와 十자로
Ⅳ. 용맥과 수구
1. 끊어진 용맥과 팔달산
2. 열린 수구와 두 개의 수문
Ⅴ. 대대적인 비보
1. 경관을 고치려는 시도
2. 식수와 조림
3. 물형 비보
Ⅵ. 정조의 풍수론
1. 선간수구론 부정
2. 유택과 양기
3. 안온과 관통의 길항
Ⅶ. 맺음말
1. 연구 결과의 요약
2. 건축사학의 현재성
<참고문헌>
ABSTRACT

저자

  • 김병주 [ KIM Byeongju | 경일대학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설립연도
    2000
  • 분야
    예술체육>예술일반
  • 소개
    동양예술을 각 부문에서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동양예술에 관한 관심을 갖는 학인들이 학문적 담론을 통해 동양예술의 창조적 계승, 발전을 도모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동양예술 [Oriental Art]
  • 간기
    계간
  • ISSN
    1975-0927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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