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Odaesan is a sacred mountain which was established in the earliest period of Korean Buddhism completed by the influence of Odae Mountain in China. However, Jajang, who was regarded as its founder, worked just as the partial initiator rather than the full - scale originator of Silla Odaesan. For this reason, in the completion and establishment of Silla Odaesan, the later characters of Bocheon(寶川) and Hyomyeong(孝明) became very important. This paper examines the peculiar characteristics of the Silla Odaesan, focusing on the roles of Jajang, Bocheon and Hyomyeong in establishment of Silla Odaesan. First, it was suggested that the possibility of Jajang’s personal meeting with Mañjuśri in China's Mt. Odae was valid, although the existing data on Jajang are limited. And, in the controversial time and place that Jajang made pilgrimage to Chinese Odaesan and met Mañjuśri, some arrangement was made based on the literature. Second, through the review of the religious experience of Bocheon and Hyomyeong, it was suggested that their two religious experiences might be independent from each other to some degree. And, in regards to the fact that Silla Odaesan had different features from Chinese Odaesan, it was clarified that this was due to the dual structure of Mañjuśri and Avatamska. In emphasis of Avatamska, Silla Odaesan established a unified background with Wonyung(圓融) so as to make it possible to synthesize all aspects of Myeongju Buddhism(溟州佛敎) that was popular at the time. In other words, Silla Odaesan was originated under the influence of Mt. Odaesan in China, but it was completed with its unique characteristics of Silla Buddhism.
한국어
신라오대산은 중국오대산의 영향으로 완성된 한국불교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확립되는 聖山이다. 그러나 開創者로 평가되는 慈藏의 행적은 신라오대산을 완전히 시작했다기보다는 제한적인 시원자의 역할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신라오대산의 완성과 정립에는 이후에 寶川과 孝明이라는 인물이 비중 있게 등장하게 된다. 본고는 신라오대산의 확립과 관련해서 자장과 보천·효명의 역할을 중심으로, 신라오대산만의 특징에 대해 검토해본 것이다. 먼저 자장과 관련해서는 현존하는 자료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중국오대산의 文殊親見 가능성이 타당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그리고 異見이 있는 자장이 중국오대산을 참배하는 시기와 문수를 친견하는 장소 및 신라오대산의 개창 시기에 대해서도 문헌에 기초한 정리를 진행하였다. 다음으로 보천과 효명의 종교체험 검토를 통해서는, 이들이 겪는 두 가지 종교체험이 각기 나름의 독립성을 유지했을 개연성을 제시해 보았다. 그리고 중국오대산과는 다른 특징이 신라오대산에서 확인된다는 점과 관련해, 이것이 문수와 화엄의 이중구조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화엄의 강조로 인하여 신라오대산은 원융과 통합적인 배경을 확립하며, 이는 당시에 유행하던 溟州佛敎의 모든 양상들이 종합될 수 있도록 한다. 즉 신라오대산은 중국오대산의 영향에서 비롯되었지만, 신라불교만의 독자적인 특징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목차
한글요약 Ⅰ. 序論 Ⅱ. 자장의 문수친견과 신라오대산 개창 1. 자장과 관련된 현존하는 문헌군과 문제점 2. 중국오대산 문수친견의 타당성 3. 자장의 溟州行과 신라오대산의 시작 Ⅲ. 보천과 효명의 오대산 정립과 문수 및 화엄 1. 보천과 효명의 종교체험과 五臺五萬眞身信仰 2. 신라오대산 신앙의 특징으로서의 문수와 화엄 Ⅳ. 結論 참고문헌 Abstract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