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uropean and American country pressed it to open a country for market expansion in the countries of the East Asia at the mid-19th century. The Ryukyu dynasty reached the Opening country by this current of the times, too. However, international relations built in the East Asia world just continue, Ryukyu fell into diplomatic contradiction called the construction of new international relations by the treaty conclusion with American and European countries. Ryukyu performed a policy of the prostitute concealment at this time. Prostitutes did business for a foreigner (Chinese, Japanese) before opening a country. But a prostitute was admitted in a protection plan for the general woman by it increasing that Westerners came to Ryukyu. And Ryukyu was going to take the consistency of the foreign policy by being going to conceal a prostitute to not only Westerners but also the Chinese. In addition, the concealment policy of RyukyuJapan became the diplomatic dispute for Ryukyu dynasty. As for this policy, Ryukyu did not belong to Japan for China and was established to express that it was Ryukyu which became independent from Japan. The relations of Ryukyu- Japan were in danger of being exposed externally by being able to do the longterm stay of Westerners in Ryukyu. It is thought that a concealment policy for the prostitute who can easily contact Westerners and a Chinese was one foreign policy of Ryukyu control.
한국어
19세기 중엽, 서양제국이 무역시장 확대를 위해 동아시아세계로 진출함에 따라 동아시아 나라들은 개국의 압박을 받게 되면서 류큐왕부도 개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동아시아세계에서 구축된 질서는 그대로 존재한 채로 서구 나라들과의조약체결에 의한 새로운 국제관계 구축이라는 외교적 모순에 부닥치게 된다. 즉 항례적으로 행해지는 중국의 책봉사가 류큐에 파견되거나 관선이 파견되는 와중에 개국에 의해 서구의 나라, 즉 서구인들이 류큐로 내항해 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류큐는 나하 유녀(게이세이)를 은폐하는 방침을 세우게 된다. 개국 이전 시기의 게이세이는 오히려 이국인(중국인, 일본인)을 상대하는 류큐의 유일한 여성 신분에 있었다. 그러나 서구인들의 류큐 내항이 증가함에 따라 보통의 일반여성 보호책 안에 이 게이세이도 편입되어 갔다. 그리고 중국인에게도 게이세이의 존재를 부정하고 은폐하려는 정책을 동시에 실시했다. 서구인뿐만 아니라중국인에게도 게이세이를 은폐하려는 의도는 외교정책의 일관성이 보이는 부분이다. 또한게이세이는 19세기 초기에 서구인의 포교대상이 된 만큼 서구인에게 노출되기 쉬운 입장이었다. 이외에 류큐왕부가 외교문제로 여긴 것 류일은폐정책의 노출이었다. 류일은폐정책은중국에 대해 류큐가 일본에 속하지 않는 독립된 왕조임을 대외관계상 상징적으로 나타내기위해 연출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인의 류큐 장기 체류가 가능하게 됨에 따라류큐와 일본의 관계가 중국에게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이 크게 되었다. 이러한 서구인과 중국인, 즉 이국인들과 쉽게 접할 수 있는 게이세이에 대한 통제책, 즉 게이세이은폐책은 하나의 외교정책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Global Center for Japanese Studies]
설립연도
2008
분야
인문학>일본어와문학
소개
본 연구소는 일본학 관련의 학문의 한 분야를 발굴·개척하여 문화의 상호작용에 의한 교섭에 대해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일본학의 다양한 면모를 현재화하는 것을 취지로 한다.
일본학 국제비교란 국가나 민족이라는 분석 단위를 넘어 동아시아라고 하는 문화복합체를 상정하고 그 내부에서 문화생성, 전파, 접촉, 변용에 주목하여 종합적인 문화교섭의 모습을 복안적이고 종합적인 견지에서 해명하려고 하는 새로운 일본학 연구의 하나인 문화교섭학을 소재로 하여, 이미 한일교류사를 중심으로 한 문화교류사의 연구축적을 바탕으로 이를 더욱 확대하여 글로벌한 시점에서 문화교섭학을 중심으로 일본의 문화교류연구를 학문체계로서 구축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본 연구소는 첫째, 다대다 관계의 문화적 복합체로서 인식하는 복안적 시좌를 공유하고 국제적 발진력을 가진 자립한 신진연구자를 육성하고, 둘째, 종래의 2개국간 혹은 학문 문화별 문화연구를 넘어 새로운 학문 분야로서의 일본 문화교섭학을 창출하고 그 이론과 방법, 구체적 사례를 연구하며, 셋째, 각국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교류연구, 대외관계사 연구 등을 국제적으로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동아시아 각 지역의 연구를 리드하고 고유의 국제학회를 가지는 연구허브를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