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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쇼(芭蕉)가 교라이(去來)에게 보낸 서간문을 통한 교류에 관한 고찰
Study on the exchange through a letter sent by the Bashō to Kyor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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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비교일본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36집 (2016.06)바로가기
  • 페이지
    pp.201-218
  • 저자
    許坤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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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letters sent by the Bashō to the Kyorai, there are various ways of conversation two people appeared. The letters can also see a relationship with Bashō and the other disciples. The main contents of the letter are as follows. First, Bashō is speaking his mind frankly in a letter to his disciples. Second, Bashō is that on the day-to-day life in a letter, and noted that Haikai about it. Third, Bashō has been mentioned only as to write Haikai. Thus the Bashō through a letter to the Kyorai, can see the strong relationship the two of them. And letters have shown a strong willingness of the Bashō to reform the Haikai. Bashō disciples of the generally is known as about 2,000 people. The Bashō and disciples were able to maintain a close relationship, because there was a medium of Haikai. Bashō maybe that it could well take advantage of their relationship with the disciples for Haikai innovation. However, Bashō did not think his disciples as a tool for their own Haikai development. Bashō was very important to think of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his disciples. Bashō sent letters to the Kyorai may be that a very important role in maintaining a close relationship with human development and of the Haikai.
한국어
바쇼가 교라이에게 보낸 서간문에는 두 사람의 다양한 교류 방법을 접할 수 있고, 바쇼와 다른 문인들과의 다양한 인간관계도 확인할 수 있으며, 서간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간을 통해서 문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고 있다. 둘째, 문인들과 일상적인 교류를 하면서 동시에 하이카이에 대한 자신의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셋째, 서간의 화제가 오로지 하이카이에만 국한되어 있는 서간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바쇼가 자신의 제일 측근이며 수제자이었던 교라이에게 보낸 서간문을 통해서는, 두 사람의 견고한 인간관계에 근거한 인간적인 교류와 바쇼가 일생의 삶의 목표로 삼았던 하이카이의 개혁에 대한 자신의 강력한 의지가 나타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바쇼의 문인은 약 2천 명 정도였다고도 전해지고 있는데, 바쇼와 그들이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이카이라는 매개체가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바쇼는 자신의 하이카이 개혁을 위해서 문인들과의 관계를 충분히 활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바쇼는 문인들을 자신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단순한 하나의 도구로 인식하기보다는, 먼저 자신과 주변 문인들과의 더불어 인생을 고민하고 풀어가는 인간적인 돈독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쇼는 자신의 주변 문인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지면서 한편에서는 자신의 학문적 목표를 함께 이루어 갔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바쇼가 교라이에게 보낸 서간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목차

Abstract
 1. 序論
 2. 서간의 의의
  2.1 【貞亨3年閏3月10日 芭蕉43歳 1686년】
  2.2 【元禄3年7月上中旬 芭蕉47歳 1690年】
  2.3 【元禄3年8月 芭蕉47歳 1690年】
  2.4 【元禄3年 12月下旬 芭蕉46歳 1690年】
  2.5 【元禄4年3月9日 芭蕉48歳 1691年】
  2.6 【元禄4年7月12日 芭蕉48歳 1691年】
  2.7 【元禄5年2月18日 芭蕉49歳 1692년】
  2.8 【元禄5年5月7日 芭蕉49歳 1692年】
  2.9 【元禄7年1月29日 芭蕉51歳 1694年】
  2.10 【元禄7年8月9日 芭蕉51歳 1694年】
  2.11 【元禄7年9月10日 芭蕉51歳 1694年】
 3. 結論
 <참고문헌>
 <국문요지>

키워드

바쇼 하이카이 쇼몽 교라이 서간 Bashō Haikai Syoumon Gyorai. Letter

저자

  • 許坤 [ 허곤 | 강원대학교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Global Center for Japanese Studies]
  • 설립연도
    2008
  • 분야
    인문학>일본어와문학
  • 소개
    본 연구소는 일본학 관련의 학문의 한 분야를 발굴·개척하여 문화의 상호작용에 의한 교섭에 대해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일본학의 다양한 면모를 현재화하는 것을 취지로 한다. 일본학 국제비교란 국가나 민족이라는 분석 단위를 넘어 동아시아라고 하는 문화복합체를 상정하고 그 내부에서 문화생성, 전파, 접촉, 변용에 주목하여 종합적인 문화교섭의 모습을 복안적이고 종합적인 견지에서 해명하려고 하는 새로운 일본학 연구의 하나인 문화교섭학을 소재로 하여, 이미 한일교류사를 중심으로 한 문화교류사의 연구축적을 바탕으로 이를 더욱 확대하여 글로벌한 시점에서 문화교섭학을 중심으로 일본의 문화교류연구를 학문체계로서 구축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본 연구소는 첫째, 다대다 관계의 문화적 복합체로서 인식하는 복안적 시좌를 공유하고 국제적 발진력을 가진 자립한 신진연구자를 육성하고, 둘째, 종래의 2개국간 혹은 학문 문화별 문화연구를 넘어 새로운 학문 분야로서의 일본 문화교섭학을 창출하고 그 이론과 방법, 구체적 사례를 연구하며, 셋째, 각국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교류연구, 대외관계사 연구 등을 국제적으로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동아시아 각 지역의 연구를 리드하고 고유의 국제학회를 가지는 연구허브를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비교일본학 [Comparative Japanese Studies]
  • 간기
    연3회
  • pISSN
    2092-5328
  • 수록기간
    1993~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309 DDC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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