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Goryeo Dynasty was constantly embroiled in wars. The whole country suffered from atrocity of war due to Mongolian invasions between the 18th year(1231) and the 46th year(1259) of King Gojong’s reign. The city of Jeonju was at a location where the enemy had to pass to invade the Honam region. However, little attention has been given to the place when discussing Mongolian invasions. Research on Jeonju needs to be conducted to understand the circumstance and role of the region during Mongolian invasions. Mongolian soldiers first appeared in Jeonju in the 23rd year of King Gojong’s reign. They appeared in the western areas of Jeonlabukdo Province including Jeonju and Buan, presumably, to loot military provisions. They took hold of fortresses including Guishin Seong, Geumsan Seong and Geumdong Seong located in Mountain Moak near Jeonju. At the time the invasion ended with the attack. Later Mongolian soldiers again wreaked havoc on Jeonju in the 34th, 40th, 41st through 43rd years of King Gojong’s reign. The worst damage was done between June in the 42nd year of King Gojong’s reign and the summer of the following year. Significant damage was done for an extended period of time as to make it hard to deliver letters across Jeonlado Province. As Mongolian invasions went on, conflict arose between the public and government officials due to exploitations. Most notably, Lee Ansa clashed with central government officials in the 39th year of King Gojong’s reign. It can be seen as a personal conflict between Lee Ansa―who was a local gentry of Jeonju―and government officials. However, more reasonably, it was triggered by tyrannical ruling of officials on Jeonju people in the process of building and repairing fortresses. Jeonju was not the only place where such conflicts occurred. Rather, widespread social issues of Goryeo Dynasty were projected in what transpired in Jeon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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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宗代 고려는 내내 전쟁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종 18년(1231)부터 고종 46년(1259)까지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고려 전체가 전쟁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시기였다. 전주는 북방 세력이 호남지역을 침입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곳임에도, 그간 몽골의 침입에 대한 논의에서 그리 많이 거론되지 않았다. 몽골의 전라도지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주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다. 몽골병이 전주에 처음 나타난 것은 고종 23년이었다. 이때 침입한 몽골병은 전주와 부안 등 전북 서부 지역에 출현하였는데, 군량미 확보를 위한 침투였다고 판단된다. 그 과정에서 전주 인근의 모악산에 위치한 귀신성·금산성·금동성 등을 함락시켰다. 이때는 전북지역을 공격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이후 몽골병은 고종 34년과 40년, 41년 그리고 42년부터 43년에도 전주에 피해를 입혔는데, 이 가운데 가장 큰 피해는 고종 42년 6월부터 고종 43년 여름까지였다. 이때는 전주를 포함한 전라도 지역에 서신 왕래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장기간에 걸쳐 많은 피해를 주었던 것이다. 이 당시 전라도 공격은 세곡이 강화도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 재정 및 식량의 부족을 일으켜 고려가 항복을 하게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전쟁이었다. 몽골의 침입이 진행하는 가운데, 고려는 관리들의 수탈로 인한 백성들과의 충돌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고종 39년의 이안사와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충돌이었다. 전주의 토호였던 이안사와 이를 제압해야 하는 중앙 관리 간의 개인적인 대립이라고도 할 수도 있지만, 산성 수축 혹은 보수 과정에서 전주민들에 대한 관리들의 폭정으로 인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이다. 이러한 충돌은 비단 전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 고려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가 전주에서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몽골의 전북지역 침입 Ⅲ. 전라도 남부지역 침입과 전주 Ⅳ.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 문헌>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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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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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