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bate over popular arts was the most famous debate in the 1910s, which has impacted the image of the people in modern Japan. This study paid attention to the ideas and thoughts of Honma Hisao, who had been neglected in the precedent studies. By opposing Tolstoyism, Honma succeeded to separate the popular arts and liberal arts. It was very innovative for Honma to secure people’s own place in the field of art. Moreover, Honma equally valued the popular arts and belles-lettres. Honma accomplished this because he emphasized the pleasure of art more than art’s inherent beauty. Because Honma was under the influence of William Morris, he affirmed the common people just the way they are. Criticizing Honma, Osugi Sakae, influenced by Romain Roland, belived that the new emerging classes would create the new form of art. However, the idea of Osugi was so ideal that it caused Osugi to deny the popular culture and to ignore the actual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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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예술논쟁은 1910년대를 대표하는 논쟁으로 일본 지식인들의 민중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선행연구에서는 처음으로 논쟁을 제기한 혼마 히사오를 간과해 왔으나 본 연구는 혼마의 주장에 주목해 그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했다. 우선 혼마는 당시 지식인 사이에서 유행했던 톨스토이주의에 대항하여 “민중예술”과 “일반적 예술”을 분리시켰다. 이로써 혼마는 민중의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게다가 혼마는 교육을 받지 못 하는 이들의 “민중예술”을 “고등문예”와 동등하게 취급한다. 이처럼 혁신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혼마가 예술에 내재하는 가치보다는 예술이 주는 쾌락을 중시했기 때문이었다. 혼마가 이런 주장을 펼친 사상적 배경을 조사해보면 윌리엄 모리스로부터 혼마가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혼마는 윌리엄 모리스의 사상을 수용하여 민중이 즐기는 문화와 예술을 있는 그대로 긍정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혼마의 민중예술론에 오스기 사카에가 반발한 이유도 쉽게 이해된다. 오스기는 로맹 롤랑을 번역하며 신흥계급에 의해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는 것에 희망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오스기는 민중이 즐기던 기존의 예술을 부정하게 된다. 혼마와는 달리 오스기는 민중을 지나치게 이상화하여 현실의 민중을 도외시했던 것이다.
한국일본사상사학회 [Korean Association For Japanese Thought]
설립연도
1997
분야
인문학>철학
소개
한국일본사상사학회는 일본사상 및 그와 관련되는 분야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회원상호간의 긴밀한 학술교류와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1997년 설립되었다.
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본 학회에서는
1. 정기 혹은 비정기적인 연구모임과 학술연구발표회의 개최,
2. 학술지 및 연구 논저의 편집간행,
3. 국내외 연구단체와의 학술교류,
4. 본 학회의 설립목적에 부합되는 사업을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