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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당 유정의 사문상
A Study of a Figure in Sa-Myeong Yu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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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정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정토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28권 (2017.12)바로가기
  • 페이지
    pp.337-369
  • 저자
    한상길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26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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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A Seon master Sa-myeong Yujeong(1544-1610), he lived during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a period which endured the Japanese Invasion, and became a national hero during it. This study is based on records such as Sa-myeong-daesa-jip and Bun-chung-seo-nanrok. I followed his life as a monk, studying the process of enlightenment, performance and enlightenment. He was one of the leading disciples of Master Seosan Hyujeong(1520-1604). Sa-myeong was born in Miryang City of Gyeongsangbuk-do Province. After the deaths of his mother in 1558 and his father the following year, he became a monk at Jikji-sa Temple in Gimcheon City. Early in his career as a monk, he studied both Buddhist and Confucian texts and he communicated with Confucian scholars. In 1575, he was recommended for the leadership of the Seon Order, but refused and instead traveled to Mt. Myohyang-san. There he was accepted and instructed by preceptor Seosan. Together with his teacher, he organized and became a leader of the Buddhist monastic militia that defended the kingdom against the Japanese invaders. During and after the war he was appointed as a royal envoy and participated several times in peace negotiations with Japan; his successful trip there after hostilities ceased resulted in the return of many kidnapped prisoners. Sa-myeong was recognized for his remarkable patriotic services by the Joseon government and society at large. The king had a hermitage named Hongje-am Hermitage built right next to Haein-sa to serve as his retirement home and memorial. He remains an exemplar of patriotism, regarded as one of the greatest heroes of the hoguk-bulgyo(nation-protecting Buddhism) tradition. He continues to be remembered in modern times, with numerous statues and other memorials around Korea. His patriotism is not a practice of Confucian thought, it was the basic principle of Buddhist monks. The relief of regeneration is the way to practice mercy, there was a firm conviction that the guarding of the king was the guardian of the Buddha.
한국어
사문은 출가수행자로서 대승불교의 이상적인 수행자인 보살을 표방한다. 즉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자리이타 정신을 지향한다. 사명당은 “번뇌없는 학문을 배우기 위해” 출가하였다. 󰡔사명당대사집󰡕과 󰡔분충서난록󰡕 등의 기록을 토대로 사명당의 생애를 따라 사문으로서의 출가와 수학, 수행과 정진, 그리고 깨달음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사명당은 임진왜란의 국난을 극복하는데 앞장 선 민족의 영웅이다. 조선중기 억불의 시대에서 승려의 신분으로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의병으로 투신하여 수많은 전장을 누볐다. 7년간의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산성 축성과 궁궐 공사 등 국가의 부름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사명당은 의승장 이전에 출가수행자였다. 16세에 출가하여 전쟁에 참여하는 49세까지 33년간 교학을 탁마하고 참선 수행에 전력하는 출가사문이었다. 일찍이 32세에 서산 휴정의 문하에 입실하여 조선중기 법맥을 계승하는 적통(嫡統)으로 인정받는 등 억불시대의 조선불교를 짊어질 동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명당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의승장’, ‘구국의승’ 등으로만 국한되어 있다. 그의 구국의 업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사문으로서의 유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우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명당의 사문상을 출가 시절과 봉은사에서의 수학, 스승 서산의 가르침, 그리고 깨달음 직후의 불사 활동 등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후 사명당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스승의 명에 따라 의승으로 투신한다. 1608년 병을 얻어 해인사로 은거하기까지 무려 17년 동안 전장을 누비고, 일본을 왕복하였으며 산성을 축조하였다. 이 오랜 세월 혁혁한 전공을 올리고, 피랍된 동포를 귀환시킨 결과, 사명당은 백성들에게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영웅으로 회자되었다. 조선사회의 주역을 자처했던 유자들도 사명당의 위대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명당은 출가 이래 한번도 사문임을 잊어 본 적이 없고, 창검을 들고 왜적을 물리치는 일은 중생구제의 방편이라는 믿음을 버린 적이 없었다. 즉 사명당은 의승장 이전에 출가 사문으로서의 본분사에 철저하였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의승들은 전쟁이 장기화되자 환속하는 일이 빈번하였고 심지어 의승장 출신들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사명당은 결코 흔들림 없이 구국의 선봉에 나아갔다. “여래가 세상에 나온 것은 원래 중생을 구호하기 위해서”라며 왜적을 물리치는 일이 곧 사문으로서 중생을 구제하는 길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사명당의 구국활동은 유가적 충의사상의 발로가 아니라 사문의 본분사였고 하화중생의 실천이었다. 중생을 구호하는 일이 자비를 실천하는 길이고, 임금을 지키는 일이 부처님을 지키는 일이라는 출가수행자로서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출가와 수학
 Ⅲ. 승과 급제와 수행
 Ⅳ. 스승 서산의 가르침
 Ⅴ. 깨달음과 월정사 중건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사명 유정 호국불교 허응 보우 의승 월정사 유점사 봉은사 직지사 표충사 승과 Sa-myeong Yujeong hoguk-bulgyo(nation-protecting Buddhism) Heo- eung Bo-u seunggun(monk soldiers) Woljeong-sa Bong-eun-sa Jikji -sa Pyochung-sa seunggwa(monastic examination system).

저자

  • 한상길 [ Han, Sang-gil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조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정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Pure Land Buddhism]
  • 설립연도
    1988
  • 분야
    인문학>불교학
  • 소개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정토학연구 [Journal of the Pure Land Buddhism]
  • 간기
    반년간
  • pISSN
    1229-1846
  • 수록기간
    1998~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20 DDC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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