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per examines the reason and time Han-am who had been a head master(Josil, 祖室) of Bongeun Temple in Mt. Sudo moved to Sangwon Temple in Mt. Odae. I point out the involvement of monks like Hong boryong, the chief priest of Woljeong Temple on Choseon Buddhist Chogye Order(中央敎務院) and the real condition(實情) of Odae-san Temples(五臺山門) under the Temple Act promulgated by Japanese colonial administration in the first half of 1920’s and the effect of 3·1 Movement as the background of his move. I reexamine Han-am’s activities since taking office as a head master of Bongeun Temple in 1923. While tracing the reason and course of his move to Sangwon Temple, I further explore and develop the view that Lee Jongwook asked him for the move to pay off its debts. Moreover, I retrace the origin of theory that he moved to Sangwon Temple in 1925, which has regarded as the established theory of Odae-san Temples and the widely-accepted notion in academic world related to when he moved there and confirm the recent research trend in the subject is changing from it to strengthening the view of 1926 as that time. I also reinterpret the oral materials by Cho youngmyung and Kim kosong. To sum up, we have seen that Han-am left Bongeun Temple around the middle of March in 1926, came to live in Sangwon Temple in early May, took office as a head master of Woljeong Temple, and then moved to Sangwon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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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암(漢巖)이 수도산(修道山) 봉은사(奉恩寺)에서 조실(祖室)로 활동하다 오대산(五臺山) 상원사(上院寺)로 이거(移居)한 연유와 시기를 고찰한 것이다. 필자는, 그 배경으로 1920년대 전반 일제의 사찰령 체제와 3·1운동의 흐름 아래, 월정사(月精寺)의 주지 홍보룡(洪莆龍) 등의 중앙교무원(中央敎務院) 활동과 오대산문(五臺山門)의 실정(實情)을 살폈다. 이어 1923년 한암의 봉은사 조실 취임과 그 활동을 재검토하고, 한암이 상원사로 이거한 연유와 과정을 추적하면서 월정사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한 ‘지암초빙설(智巖招聘說)’을 확대하였다. 또한 한암의 상원사 이거와 관련하여 오대산문(五臺山門)의 정설이자 학계의 다수설인 1925년설을 소급하여 검토하면서 1926년설이 강화되는 학계의 연구 동향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조용명과 金古松의 구술 자료를 분석, 재해석하였다. 요컨대, 한암은 1926년 양력 3월 중순 봉은사를 출발하여 5월 초순 오대산에 입산하여 19일 석탄일(釋誕日)에 월정사의 조실로 취임하고 상원사로 이거(移居) 하였다.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1920년대 전반 五臺山門의 실정 Ⅲ. 奉恩寺주석과 上院寺로의 移居연유 Ⅳ. 1925년ㆍ1926년 歸山說의 검토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한암(漢巖)봉은사(奉恩寺)오대산문(五臺山門)상원사(上院寺)월정 사(月精寺)지암(智巖)귀산탄허(呑虛)조용명김고송(金古 松)Han-amBongeun TempleOdae-san TemplesSangwon TempleWoljeong TempleJi-amReturn to the Mt. OdaeTan-heoCho youngmyungKim kosong.(歸山)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