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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부의 문수신앙과 西夏 오대산의 개창
The Belief of Manjuśri Bodhisattva in Western China and the Emulation of Mt. Wutai in Tangut
중국서부의 문수신앙과 서하 오대산의 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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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정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정토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28권 (2017.12)바로가기
  • 페이지
    pp.41-71
  • 저자
    계미향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26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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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belief of Manjuśri Bodhisattva begun from Dang dynasty that how it was flourished and developed in Tunhuang, Uigur and Xixià[西夏國]. At the time which was under the rule of Turfan some altar portrait of Manjuśri Bodhisattva[文殊變] was enshrined in Mogao Caves[莫高窟]. At the time of Wu Dai[五代] a large complete map of Mt. Wutai was established in the sixty first cave of Mogao of Tunhuang which was a base of Silk road culture and also a foundation of Manjuśri belief of Wutai mountain by Tunhuang residents. The sixty one cavern of Mogao was also called by Manjuśri-hall since a statue of Manjuśri Bodhisattva was enshrined. On the other hand it is found a record of Mt. Wutai belief by Uigur people in the Hall of Jù-lóng[居庸關] of the Great Wall near Peiking of China . The empire of Xixià established in 11st century the Manjuśri belief of Mt. Wutai was also flourished but the Xixià people could not pilgrimize Mt. Wutai of Shanxi province at that time for diplomatic problem with Sòng dynasty of China. So the royal family of Xixià by the demand of northwest Buddhist of China wishing pilgrimize on Mt. Wutai had emulated the belief of Mt. Wutai in the valley of Mt. Hèlán of Língzhōu. The examine of Mt. Wutai belief in Xixià is attractive for this writer that the source of the belief on Manjuśri Bodhisattva in Mt. Hèlán was a site of practicing asceticism by Muru[無漏], a Buddhist pilgrim of Silla for ancient India. At the time of the An Lushan Rebellion in 755 A.D. emperor Sùzōng[肅宗] ascended the throne from a feudal lord who experienced a master Muru appeared in his dream who practiced asceticism in the valley of Mt. Hèlán of Língzhōu. The emperor invited the master Muru and the master Bùkōng[不空] to lead the religious rite for national salvation in the imperial palace of Chángān[長安] and also in the place of honored visit by emperor. After three hundred years the royal family of Xixià designated Mt. Hèlán as a second Mt. Wutai of Língzhōu and constructed some temples that enshrined Manjuśri Bodhisattva in the valley of Mt. Hèlán where the Master Muru still practiced asceticism that made the place as a foundation of Mt. Wutai belief on Manjuśri Bodhisattva by Tangut people. The Tangut people repaired Great Buddhist Stupa of Xiàyuàn[下院], Língzhōu that had enshrined statue of the master, Muru in the past. All of Buddhist devote of royal family of Xixià comes from an establishment of religious base of their own that emulated the belief of Mt. Wutai which copied the belief of Manjuśri Bodhisattva in Mt. Wutai in China that was flourished in Korea and Japan province.
한국어
본고는 당(唐)대부터 유행했던 오대산 문수보살신앙이 중국 서북부인 돈황과 위구르, 서하국(西夏國)에서는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서술되었다.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인 돈황 막고굴에는 토번의 돈황 지배기에 여러 문수변(文殊變)이 조성되었다. 이어 오대(五代)에는 막고굴 제61굴에 대형의 오대산전도(五台山全圖)가 조성되어 돈황인들의 오대산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제61굴에는 문수보살상도 조성되었기에 그곳을 달리 문수당(文殊堂)이라고도 하였다. 한편 북경 인근의 만리장성 거룡관에는 위구르인들의 오대산 신앙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에 대해서도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어 11세기에 건국된 서하국에서도 오대산 문수신앙이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서하인들은 송(宋)과의 정치적인 이유로 산서성 오대산 순례가 불가능했기에, 서하왕실은 오대산 순례를 희망하는 중국 서북부 지역 불자들의 요청으로, 영주(靈州) 하란산(賀蘭山) 백초곡에 오대산신앙을 이식하였다. 서하국의 오대산 신앙이 우리에게 더욱 뜻 깊은 이유는 하란산 문수신앙의 발원지가 바로 신라의 천축구법승 무루(無漏)의 수행지였기 때문이다. 안사(安史)의 난(755년)으로 영주에서 등극한 당 숙종은 하란산 백초곡에서 수행하던 무루를 현몽하고, 그를 어렵게 모셔와 불공삼장과 함께 행재소(行在所)에서는 물론, 장안의 황궁에서도 구국 기도를 이끌게 하였다. 그로부터 약 300년 후 같은 지역에서 건국한 서하왕실에서는 무루가 수행하던 하란산을 오대산으로 상정하고, 그가 수행하던 백초곡에 문수보살을 주존으로 모신 여러 사찰을 창건하여 서하인들의 신앙의 중심지로 삼았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무루의 소상을 모신 영주(靈州) 하원(下院)의 굉불탑(宏佛塔)도 크게 보수하였다. 서하왕실의 이런 노력은 이미 한국과 일본에 이식되어 있던 오대산신앙을 모범으로 삼아 자신들의 신앙처를 마련한 결과이었다.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중국 서부의 문수신앙
  1. 토번과 위구르의 문수신앙
  2. 五代의 돈황 제61굴
 Ⅲ. 서하 오대산 개창
  1. 서하 오대산 개창의 배경
  2. 서하의 五台山文殊信仰
  3. 신라 無漏와 하란산 백초곡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토번 돈황 오대산전도 문수당 위구르 서하 하란산 북오대산 백초곡 Tibet Tunhuang The large complete map of Mt. Wutai Manjuśri-hall Uigur Xixià(西夏) Mt. Hèlán(賀蘭山) Mt. Northern Wutai Ven. Muru(無漏) Baicaogu(白草穀). 無漏

저자

  • 계미향 [ Kye, Mih-yang | 전북대학교 박사후 과정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정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Pure Land Buddhism]
  • 설립연도
    1988
  • 분야
    인문학>불교학
  • 소개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정토학연구 [Journal of the Pure Land Buddhism]
  • 간기
    반년간
  • pISSN
    1229-1846
  • 수록기간
    1998~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20 DDC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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