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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0년대 조선인의 가라후토 이주와 인식
Immigrate to Karafuto of Korean and its perception from 1910s to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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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일본근대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일본근대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9집 (2018.02)바로가기
  • 페이지
    pp.353-370
  • 저자
    이준영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26645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원문정보

초록

영어
Most established Karafuto researches have been done mainly on postwar compensation or Diaspora. And these cover the period from 1930s to the postwar era. Even though Diaspora research have to be based upon the historical context, there is a lack of research on immigrate to Karafuto of Korean before 1930s. Therefore, this thesis will examine immigration and settlement of Korean on documents of police administration and newspaper materials, and will consider the perception on Korean. Especially in 1917, Korean in labor group immigrated to Karafuto on ‘trial’ through ‘recruitment’ by enterprise. And immigrating of Korean became active because their work efficiency get recognition. From 1920s Due to Japan occupied the whole of Sakhalin, immigration purposes and methods of Korean were diversified. But the police authorities took a negative stance. Enterprises and the police authorities show position difference that Enterprises drew Korean labors through ‘recruitment’ and ‘instruction’ in the shortage of labor, whereas the police authorities devalued the labor by reason of ‘indolence’, ‘distrust’, ‘laziness’, ‘like gambling’, ‘indecision’, ‘poor sense of hygiene’, ‘ignorance’ and other reasons.
한국어
기존의 가라후토 연구는 전후보상 연구나 디아스포라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193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패전까지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디아스포라 연구는 역사적 맥락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정작 1930년대 이전의 가라후토 조선인 이주에 관한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경찰행정문서와 신문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조선인의 이주와 정착을 살펴보고 여기에서 조선인에 대해 어떤 인식을 하였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특히 1917년 조선인 노동자 단체가 기업에 의한 ‘모집’을 통해 처음으로 ‘시험적’으로 가라후토에 이주하였으며 이들의 능률이 인정되어짐에 따라 조선인 이주가 심화되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 일본이 남북 사할린 전체를 점령하면서 조선인의 이주 목적이나 방식이 다양해졌고 치안당국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가라후토는 노동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업은 ‘모집’과 ‘교도’를 통해 조선인 노동자를 불러들였다면 치안당국은 조선인이 ‘나태’, ‘시의심(猜疑心)이 강함’, ‘유타(遊惰)’, ‘사행(射倖)을 선호’, ‘뇌동성(雷同性)’, ‘위생관념유치’, ‘무학’ 등의 이유로 노동의 가치를 절하하였다는 점에서 입장 차이를 보인다.

목차

1. 들어가며
 2. 가라후토시대의 시기별 구분
 3. 1917년을 기점으로 한 조선인 '모집'
  3.1 가라후토의 노동자 부족 상황
  3.2 '모집'을 통한 최초의 단체이주 조선인
  3.3 조선인 기생의 이입
 4. 1920년대 가라후토 조선인 인식
 5. 마치며
 참고문헌
 要旨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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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준영 [ Lee, Jun-Young | 한양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 박사과정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일본근대학회 [The Japanese Modern Association of Korea]
  • 설립연도
    1999
  • 분야
    인문학>일본어와문학
  • 소개
    본 학회는 한국, 일본의 문학 및, 어학, 문화, 사상, 역사 등 여러 분야의 연구자 및 대학원생의 연구성과에 관한 자유로운 발표, 토론을 통해 학문발전과 학술교류를 행하고자하는 목적에서 설립되었다. 따라서 본 회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학술연구발표회 및 연구회와 학술지 발간, 국내외 관련 학계와의 학술교류, 관련정보의 구축 및 제공 등의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간행물

  • 간행물명
    일본근대학연구 [ILBON KUNDAEHAK YUNGU ; The Journal of Korean Association of Modern Japanology]
  • 간기
    계간
  • pISSN
    1229-9456
  • 수록기간
    2000~2019
  • 십진분류
    KDC 830 DDC 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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