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일본의 불평등조약 개정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 개국기의 개국파와 양이파의 대립의 결과 중, 명치유신 이후 근대일본의 진로방향을 결징지었던 연속적인 요소를 규명하고, 더불어 攘夷를 외치던 세력이 明治 신정부를 수립함과 동시에 별안간 돌변하여 開國和親을 표방할 수 있었던 이유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많은 연구축적에도 불구하고 기존 연구에서는 납득될 만큼 명쾌히 설명되고 있지 못하다. 본고는 먼저 전형적인 開國通商論과 급진적 攘夷論을 살펴보았다. 이들 모두 일본이「淸國의 覆轍」이나 영국의 식민지 인도와 같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강렬한 구국의식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급진적 양이론에서는 일본의 독립과 서양「문명」의 섭취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본 반면, 전형적 개국론에서는 양립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이 전형적인 양이론과 개국론 사이에 다양한 양이론과 개국론이 병존하고 있었는데, 본고는 개국론과 양이론의 대립적 측면보다는 공통적인 측면에 주목했다. 공통점은 첫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국론과 양이론 모두 서양「문명」의 우월한 측면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개국론과 양이론의 공동의 궁극 목표는 조약개정과 해외웅비에 있다는 점이었다. 明治維新의 3걸 중 한사람인 大久保利通의 대외관을 통해서도 위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대외관의 변화과정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첫째 攘夷 단계에서 大久保의 양이 내용은 條約改正과 서양인 배척이었는데, 脫攘夷 단계에 이르러서도 조약개정의 논리가 서양에 대한 대항논리로써 연속하게 된다는 것. 둘째, 탈양이 단계에서「文明開化」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도 서양의「長技」와 정치·사회제도에 대한 이해가 이미 양이 단계에서 존재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 셋째, 굴종적이라 할만큼 서양 열강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강한 필요성이 개국화친을 표방하게 만들었던 것, 이 세 가지 점이다. 본고는 양이 단계에서 개국화친으로 전환된 과정을 볼 때 연속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과,「디플로마시」적 양이로부터 개국화친으로의 전환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강조했고, 이 점 다른 연구와는 다른 지적이다. 그러나 大久保와 같은 변화도 양이론자들에 있어서 후퇴로 보여졌다.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서 개국론과 양이론의 궁극의 목표 즉 條約改正 및「國威發揚·海外雄飛」가 강조되어 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정당화되었을 때 양이파에서 개국화친파로의 전환이 커다란 반발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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