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잠 지역에 신앙이 전파된 시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교회의 밀사로 북경을 왕래한 김유산이 1798년 이후에 진잠 산막동에 거주한 것으로 보아, 진잠에는 1798년 이전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801년(신유박해) 김유산이 체포되어 순교한 이후, 진잠의 신앙공동체가 기록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1830년대이다. 박영근 가족, 손선지 가족, 한재권 가족, 정원지 가족이 이 시기에 진잠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1860년대에는 전자연, 강순지, 김 스타니슬라오, 원 베드로, 이 바오로 등이 진잠에서 살다가 체포되었다. 따라서 진잠의 신앙공동체는 박해시기 내내 존재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진잠의 신자들은 오늘날 대전광역시 서구에 속하는 산막동, 장안, 앞재, 바랑골, 오리동 등지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농업에 종사했으며, 회장의 지도 아래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1866년에 병인박해를 맞이했다. 병인박해 때 체포된 진잠과 관련된 신자는 9명이다. 이 중 8명이 순교했고, 1명(원 베드로)은 석방되었다. 8명의 순교자 중 진잠에서 체포된 사람은 4명(전자연, 강순지, 김 스타니슬라오, 이 바오로)이며, 나머지 4명은 서산 강당리(김선양), 전주 대성동(한재권·손선지), 전주 성지동(정원지)에서 체포되었다. 타지에서 체포된 4명 중 한재권과 정원지는 진잠 출신이며, 손선지와 김선양은 타지에서 진잠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타지로 이주해 간 신자들이다. 그리고 진잠에서 체포된 4명 중 강순지, 전자연, 김 스타니슬라오는 진잠 지역에 세거한 사람이며, 이 바오로는 진산에서 진잠으로 이주한 신자였다.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설립연도
2003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