内村鑑三論― 청일, 러일 전쟁기의 一断面 ―
Uchimura Kanzo: A Cross-section of the Sino-Japanese War and Russo-Japanese War Period
표지보기
발행기관
한국일본학회 바로가기
간행물
일본학보
KCI 등재
바로가기
통권
제83권 (2010.05)바로가기
페이지
pp.213-229
저자
尹福姬
언어
한국어(KOR)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19243 복사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저자의 다른 논문
5,100원
구매하기
인용하기
관심논문등록
원문정보
초록
일본어
内村鑑三(1861-1930)は、日清戦争(1894-95)当時、強く開戦を主張した自分の立場を変え、十年後の日露戦争(1904-05)を前にしては非開戦,、つまり戦争を反対する非戦論に方向を旋回した。これによって当時日本では内村非難世論が激しく起り、内村は連日世論に叩かれながらも自分の所信を変えることがなかった。だれよりも偽善を嫌悪した内村鑑三は、過去の自分の歪んだ戦争観を隠すことに決して汲々しなかったのはもちろん、真理を探し求めるためにはどんは変化をも躊躇しなかったし、そのために「変説者」といわれるのを恐れなかった。その端的な例がすなわち、日清戦争当時の主戦論から日露戦争の非戦論に移行して行った彼の戦争観の変遷であり、信仰の深化していく過程であった。西洋のことわざの「智者は変ずる」を引用し、自らに逃げ道を設けた内村鑑三、彼は人生の後半に近づくに従い、信行一致の態度を取った。この信仰と行動の一致に至るまでに彼は絶え間ない内面の葛藤に直面し、この葛藤を統合し、真理を探し求めてはついにそれを発見し獲得する過程の連続が彼の人生であった。それを成し遂げるために、自分自身の変化を絶えず追求してやまなかったのが、内村鑑三がとっていた「学者の態度」であった。一方、日清戦争の義戦を主張した三十代初の内村は強烈な自我の持ち主であった。当時彼の強烈な自我と自己確信は同時代、門下生であった志賀直哉、武者小路実篤ら作家志望の人々に強い印象を与えながら彼らに継承される。しかし内村自身は次第に自分の自我を屈服させ、それを克服し自分に敵対する勢力まで受容していく人格にまで至る。その過程が本稿で考察した時期の内村鑑三の姿である。
키워드
義戦
主戦論
非戦論
自省
信行一致
平和
真理
저자
尹福姬 [ 윤복희 | 동덕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외국어학부 일본어학과 부교수 ]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발행기관명
한국일본학회
[Korea Association Of Japanology]
설립연도 1973
분야 인문학>일본어와문학
소개 본 한국일본학회는 일본관련 학회로는 1973년에 한국 최초로 성립되어 2015년 3월 현재 가입회원수 기준 1000여명에 달하는 방대한 학회로 발전하였다. 본 학회는 일본어학 및 일본학은 물론,일본의교육,사상,역사,민속 등 일본학 전반에 걸친 연구와 한일간의 일본학 전반에 걸친 비교 연구를 대상으로 하는 학회로서 회원들의 연구기회 제공과 정보의 교류를 주된 목표로 하고 있다. 분회 발표를 포함하여 매년 20회 가까운 학술발표회와 국제학술대회를 개최 함으로서 발표 기회의 제공과 함께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의 장으로도 활용하며 건전한 학회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간행물
표지보기
관심저널 등록
간행물명
일본학보
[The Korean Journal of Japanology]
간기 계간
pISSN 1225-1453
수록기간 1973~2026
등재여부 KCI 등재
십진분류 KDC 913 DDC 952
함께 이용한 논문 이 논문을 다운로드한 분들이 이용한 다른 논문입니다.
0 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
장바구니로 이동
계속해서 검색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