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현재 위치 Home

일반논문

고려의 탐라 수탈과 良守의 亂
The Goryeo Dynasty’s Exploitation of Tamra and Yangsu’s Rebellion
고려의 탐라 수탈과 양수의 난

첫 페이지 보기
  • 발행기관
    역사와 교육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역사와 교육 KCI 등재후보 바로가기
  • 통권
    제25집 (2017.11)바로가기
  • 페이지
    pp.111-140
  • 저자
    전영준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15839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7,000원

원문정보

초록

영어
‘Yangsu’s Rebellion’ that occurred in Tamra in 1168 was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that of peasants and lowly people in the Goryeo period, which showed the characteristics of conflicts related to social status or movement for the liberation from the fetters of social status. Yangsu’s Rebellion occurred after Tamra, an independent country, was fully incorporated into the Goryeo Dynasty. Under the circumstances that the central government had difficulties managing Tamra because of a long distance, the rebellion was also attributed to the tyranny of the local official dispatched to the region. In those days, Goryeo’s demand for tributes from the neighboring country, which had existed before its incorporation into Goryeo, was regularized every year. Goryeo exactly knew the products of Tamra, which was its neighboring country, and some Tamra people attended the royal council of Goryeo. These situations also seem to have provided an excuse for Goryeo to incorporate Tamra as a province. In addition, the political compromise between the local official dispatched to Tamra and some local powers after its incorporation into Goryeo is highly likely to have been linked to the exclusion of Tamra's existing forces. On record, the primary cause of the rebellion lays in the excessive imposition of contribution, which the local officials committed unlawfully.
한국어
1168년 탐라에서 발생한 ‘良守의 亂’은 신분적 갈등이나 신분 해방운동의 성격을 보여주는 고려시대 농민‧천민의 난과는 기본적으로 달랐다. 양수의 난은 독립국이었던 탐라가 고려의 지방으로 완전히 편입된 이후에 발생하였다. 또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중앙 정부가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에 탐라로 파견된 지방관의 전횡으로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고려의 지방으로 병합되기 이전부터 있어 왔던 蕃國에 대한 공납 요구가 매년으로 상례화 되었다. 이것은 고려가 번국이었던 탐라의 물산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일부의 탐라민이 고려로 입조하였던 당시의 사정도 고려가 탐라를 지방으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데 빌미를 제공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더하여 고려의 지방으로 병합된 이후, 탐라 파견 지방관과 일부 토호세력이 정치적 타협은 탐라의 기존 세력에 대한 배제로 연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기록상으로는 지방관이 불법으로 자행한 貢賦의 濫徵에 1차적인 원인이 있다. 그러나 양수의 난은 탐라가 고려의 지방으로 완전히 편입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정치적 역학관계의 불균형이 소외된 지방민의 난으로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12세기 農民亂 발생의 원인과 전개
  1. 농민란 발생의 원인
  2. 武臣執權期 이후의 民亂
 Ⅲ. 1168년 良守의 亂 발생과 탐라
  1. 고려의 탐라 인식
  2. 양수의 난 발생과 성격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키워드

양수의 난 세공 최척경 고려 입조(入朝) 지방관의 탐학(貪虐) 토호세력 정치적 역학관계의 불균형 Yangsu’s Rebellion tax and tribute Choi Cheok-gyeong attending the royal council of the Goryeo Dynasty local official’s tyranny local powers the imbalance of political dynamics

저자

  • 전영준 [ Jeon, Young-Joon |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역사와 교육학회 [The History Education Association]
  • 설립연도
    1989
  • 분야
    사회과학>교육학
  • 소개
    역사와 역사교육의 학술적 연구 뿐만 아니라 역사현장에서 적용을 목표로 하는 실천적인 면모도 중요하게 간주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단순한 축적만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인 조상의 살아 숨쉬는 삶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들의 짧은 생각으로 고통과 아픔을 던져준 것은 없었는지, 모든 것을 수용하여 보다 나은 공동체, 열리고 참된 오늘의 삶에서 다가오는 미래의 새롬찬 세계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나아가 실천해야 활짝 열린 미래가 올 것입니다.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점검하고 후세대를 교육시켜 참된 역사를 알리고 실천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역사를 연구하고 역사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함께 하여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역사교육의 기본 텍스트인 역사교과서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부속 학회인 역사와 교육학회에서 학술 발제와 점검을 통해 진정한 역사와 역사교육이 연구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앞장을 설 것입니다. 활기차고 열린 미래의 세계를 위해 우리 모두 올곧은 역사교과서로 진정한 역사교육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뜻과 힘을 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역사와 교육 [The History Education Review]
  • 간기
    반년간
  • pISSN
    2093-5021
  • 수록기간
    1990~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374 DDC 370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역사와 교육 제25집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이 논문을 다운로드한 분들이 이용한 다른 논문입니다.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