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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戶藩密勅降下事件と九條尙忠關白の失脚に關する小考
A Study of the Imperial Command to the Mito Domain and Regent Kujo Hisatada's ousting
수호번밀칙강하사건と구조상충관백の실각に관する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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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일본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일본학보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109권 (2016.11)바로가기
  • 페이지
    pp.251-269
  • 저자
    李元雨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1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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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presents an analysis of the events that led to Kuzo Hisatada Kanpaku’s falling from power, and is concerned with the handing down of a secret Imperial command to Mito-Han in August 1858. Bakuhu concluded the Treaty of Amity and Commerce between Japan and the United States without erratum in June 1858, and subsequently Gosanke of Tokugawa Bakuhu and Tairo refused to visit Kyoto. To redeem the loss of authority, Emperor Kōmei gave a secret Imperial edict to the Mito-Han on August 8. They also suspended Kuzo Hisatada's right of Nairam, who was cooperative to Bakuhu. This process caused the gradual collapse of the institutional order of the Imperial Court, and the authority and power of Kuzo Hisatada Kanpaku weakened rapidly. The implications of the falling of Kuzo Kanpaku can be summarized as the following three points. First, the existing groups who held the formal power were replaced by new informal political groups. Second, although temporary, the task that used to be performed by Sikiji (working group officials) had to be completed by Sekke. Third, the appointment and discharge of Kanpaku, which used to be accomplished by the agreement between Tenno & Bakuhu, was decided by the emperor's informal group. A repetition of these kinds of incidents resulted in the accumulation of energy for the sudden disruption of the Ancient Regime and the mission was accomplished by the Meiji Restoration on Dec. 9, 1867.
한국어
이 논문은 1858년 8월, 미토번(水戶藩)에 밀칙을 내리는 과정과 관련하여 구조 히사타다 관백의 실각과정을 집중 분석한 논문이다. 1858년 6월에 막부는 무단으로 미일통상조약조인을 조인했다. 이에 고메이천황은 도쿠가와 삼가(三家) 또는 다이로의 상경을 지시했지만 막부는 거절했다. 고메이천황을 중심으로 한 조정은 이 사태를 만회하기 위하여 8월 8일에 미토번에 밀칙을 내렸다. 이어서 막부에 협조적이었던 구조 히사타다 관백의 내람을 정지시켰다. 이러한 과정 중에 조정 내의 제도나 선례는 차츰 붕괴되어 갔으며, 관백(섭가)의 권위도 현저하게 저하되었다. 구조관백의 실각이 가져온 의미를 다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미토번에 내리는 밀칙의 작성과정에 구조관백은 배제되고 고노에 타다히로 등 비정무 공가가 이를 주도함으로써 종래의 관백-기소・부케덴소의 정식 정무라인이 형해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둘째, 전통적으로 칙사는 하급관원인 시키지(職事)가 수행하게 되어 있는데, 섭가가 청화가에 칙사를 역임하게 됨으로써 섭가의 권위가 실추되고 섭가지배의 전통이 흔들리게 되었다. 셋째, 천황과 막부의 합의로 임명하는 조정내의 가장 중요한 포스트인 관백의 경질을 비정무 공경이 추진하여 관백의 내람을 정지시킴으로써 관백권위의 저하와 비정무공경의 정무에의 간섭을 초래했다. 1867년 12월9일 왕정복고 시에 섭가문류, 관백, 기소, 부케덴소 등 조정 내의 제도, 습관 등을 일시에 폐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사건의 중첩에 의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1. はじめに
 2. 天皇の密勅政治と関白権威の低下
 3. 水戸藩への密勅降下と関白の無力化
 4. 九条関白の失脚
 5. 結びに
 참고문헌(Reference)
 <요지>

저자

  • 李元雨 [ 이원우 |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일본학회 [Korea Association Of Japanology]
  • 설립연도
    1973
  • 분야
    인문학>일본어와문학
  • 소개
    본 한국일본학회는 일본관련 학회로는 1973년에 한국 최초로 성립되어 2015년 3월 현재 가입회원수 기준 1000여명에 달하는 방대한 학회로 발전하였다. 본 학회는 일본어학 및 일본학은 물론,일본의교육,사상,역사,민속 등 일본학 전반에 걸친 연구와 한일간의 일본학 전반에 걸친 비교 연구를 대상으로 하는 학회로서 회원들의 연구기회 제공과 정보의 교류를 주된 목표로 하고 있다. 분회 발표를 포함하여 매년 20회 가까운 학술발표회와 국제학술대회를 개최 함으로서 발표 기회의 제공과 함께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의 장으로도 활용하며 건전한 학회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간행물

  • 간행물명
    일본학보 [The Korean Journal of Japanology]
  • 간기
    계간
  • pISSN
    1225-1453
  • 수록기간
    1973~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3 DDC 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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